멕시코 내 사업에선 '친분'이 중요
글로벌 사회에 문화 차이 인정해야
중남미는 다인종 섞인 용광로 사회
경제적 해법 앞서 문화적 접근 필요
오래전 미국 국무부에서 나온 멕시코에 진출하는 비즈니스맨을 위한 매뉴얼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상담을 할 때 본론부터 말하지 말아라. 멕시코에서는 프렌드십이 중요하다. 친구가 되는 과정이 없이 진행되는 비즈니스는 성공 확률이 낮다."
친분이 있는 남미 콜롬비아 출신 여교수가 미국 대학에 부임해 갔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각종 보고, 성적 제출 등 모든 행정 절차에서 일정과 시간표를 정해놓고 이를 제때 못 지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큰 스트레스였다." 합리적이긴 하나 융통성 없는 규정 적용에 내용보다는 형식을 앞세우게 하는 행정 행위에 대한 불만이다. "멕시코에서는 약속 시간을 너무 정확히 지키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상기 매뉴얼의 또 다른 대목의 의미를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 사는 중미의 코스타리카 출신 부인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입에 안 맞는 음식이나 가부장적인 남편의 행태 같은 것을 꼽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1주일에 한 번 춤 파티가 있으면 좋겠는데 1주일은커녕 몇 달이 지나도록 춤출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제일 힘들었단다.
벌써 20년 전에 카리브해의 섬나라 도미니카공화국의 어느 한인 공장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일하는 여공들을 나무라며 라디오를 틀지 못하게 하였더니, 파업 일보 직전까지 가고 난리가 났었단다."
신속한 성과를 거두어야만 인정받으며, 일할 시간을 까먹으며 흔들어대며 즐기는 것은 죄악이라고 여기는 우리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사례이다. 우리의 관습과 사고의 틀 안에서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런 중남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가? 무조건 지키라 하고, 참으라 해야 할까? 그들이 틀렸다고 고쳐줘야 할까? 우리와 다르다고 무시해야 할까?
언제부터인가 '글로벌'이 필수인 사회가 되었는데 아직도 우리의 시선은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계화란 것이 거창한 것 같지만 그 실천은 의외로 간단하다. 남의 생활양식을 틀렸다거니 우습다거니 폄하하지 말고 우리와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면 된다.
중남미는 다른 대륙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인디오, 유럽인, 아프리카의 여러 인종과 리듬이 섞여 있고, 지형과 기후가 다양한 샐러드 사회이면서도 대부분 국가의 언어와 종교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용광로 사회이기도 하다. 같은 원주민이라 해도 찬란한 고대문명을 이룩한 마야와 잉카의 후손이 있는가 하면 원시림 속에서 석기 시대 삶의 방식을 지키고 있는 종족도 있으며 그 수만큼 옷과 집, 음식거리가 제각각이다. 이들 간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분열과 갈등 속에 한 국가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과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글로벌'은 성립될 수도 유지될 수도 없을 것이다. 지난 5월 대통령의 남미 순방을 계기로 블루오션으로서 중남미 지역이 조명을 받고 있다. 실제로 기회의 땅이기도 하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그런데 천편일률적으로 중남미에 대해서는 '풍부한 자원과 우수한 기술'의 교류협력에 초점이 맞춰진 인상이 짙다. 당연한 명제이기는 하나 중남미는 독특한 샐러드와 용광로 사회이므로 가시적인 경제적 해법에 앞서 문화적 접근을 중요시해야 한다. 한국이 교육적 열정과 철학이 있어서 발전했다는 어느 페루 교수의 평가대로 문화 전수의 바탕이 되는 교육적 접근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지금 지형과 제도가 다양한 중남미에 제품 수출과 함께 문화와 교육을 수출하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다만 ICT 기반의 교육 방식이나 온라인 쇼핑몰 같은 인프라 전수에 앞서 거기에 담을 콘텐츠, 더 나아가 열정과 철학으로 무장한 문화 비즈니스 마인드가 중요하다. 이러한 마인드 형성을 위해서는 각급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 운영이 더 확산되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교육 행정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 이런 바탕 위에 이루어지는 젊은이들의 해외 진출과 외국 학생의 국내 유치 사업의 의미와 성과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저평가 우량주라는 별칭을 가진 중남미 진출 사업의 성공을 위한 요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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