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남성의 1.7%만 여성
대개 여성은 의열투쟁 뒷바라지
광복 70주년 정신 온전히 복원을
세계 독립운동사상 양대 산맥을 이룬 나라는 아일랜드와 대한민국이다. 4년여 짧은 기간 동안 독일에게 점령당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가 있고, 독일 침공을 받은 폴란드인들의 무력투쟁이 있었다지만 아일랜드나 대한민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일랜드와 우리나라는 식민지 조건에서 보면 제국주의 국가의 바로 옆이기 때문에 영국과 일본으로부터 직접 통치에 시달렸고, 끊임없는 민족말살정책까지 당했다. 아일랜드는 12세기 후반 영국의 헨리 2세에게 침략당한 이래, 20세기에 완전 독립하기까지 무려 '800년간의 저항'을 계속해왔다. 우리는 세계정세에 둔했던 탓에 반세기에 걸친 침략과 36년 식민통치를 받았다.
그렇게 오래 식민지배를 받았으면서도 결코 독립을 원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합방 소식에 미리 자정순국하거나 온 문중이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기지를 만들어 무력투쟁했고, 또 그 무력투쟁을 뒷바라지하면서 광복의 꿈을 키워왔다. 일부 표창을 받고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었다고 하나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지난 7월 초 경상북도 정체성포럼 호국분과 멤버들과 북만주 독립유적지 답사를 갔을 때는 더욱 답답한 심경에 젖었다. 국내에 잘 알려진 남만주와는 달리 아직 학계의 발길조차 거의 닿지 않았던 북만주 유적지는 스러지고, 잊혀지고 있었다. 취원창 독립운동기지는 찾아보기조차 어려웠고, 왕산 허위 일가의 정착지였던 목단강 철령허는 중국 중동철도의 건설로 곧 허물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허위 후손인 허형식 장군은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의 공을 기려 큰 기념비를 세워주었다. 한국 사람이 아닌 중국 사람으로 기려지고 있는 현장이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아직 찾아보지도 않는데 고마운 일인지도 모른다.
국가유공자를 많이 발굴했다고는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중국군과 합작하여 독립운동을 하느라 또 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호적이 싫어서 국적을 버린 사람들은 아직 무적자가 되어 있다. 이번에 정부에서 독립유공자 후손 11명에게 국적을 부여한 것을 계기로 아직 국적을 회복하지 못한 수많은 독립유공자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빚을 지고 있는 후손들로서 낯을 들기 어려운 일이다. 정치권은 쓰잘데기 없는 일로 대립각만 세울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광복 선조로서 깎듯이 대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음영으로 광복을 도운 사람들, 특히 잊혀진 독립운동 내조자 여성들에 대한 관심도 일어나야 한다. 2014년 국가보훈처에서 발표한 남녀 독립운동가의 비율은 1만3천509명 대 241명이다.
만주에서 무장부대를 이끈 안동 출신 열혈 여성 김노숙(1906~1936)은 남만주 항일투쟁사에서 유일한 부녀무장조직을 이끌다가 일본 수비대에 의해 전사하였다. 그러나 아직 김노숙은 독립운동사에서 잊혀진 존재이다. 또 황제에 대한 충성을 내세우는 남편 이명우의 길을 따라 아들 며느리에게 '충의의 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봉화 닭실마을 출신 권씨 부인(1868~1921)도 유공자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여성들은 직접 광복투쟁에 나가는 아버지와 남편 혹은 자식을 대신하여 농사짓고 집안 건사하거나 삼시세끼 밀가루와 옥수수 죽으로 견디면서 군자금을 모아서 대주는 뒷일을 소리소문없이 해냈다. 안동 내앞 마을에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은 대개 150명에서 200명이다. 그중에 실명과 가족관계가 완전히 확인된 인물은 140명이고, 이 가운데 여성은 55명이다. 이들이 모두 독립운동에 기여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광복 70주년, 다시 한 번 나라를 잃지 않도록 나라 세우기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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