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휴가의 계절, 여름을 맞아 올해는 큰마음을 먹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돈이 있을 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다는 핑계로 그간 변변한 여행 한 번 다녀오지 못한 나 자신에게 주는 꽤 큰 선물이자 휴식이었다. 이탈리아의 유명 도시들 중 이번 여행에서 돌아본 곳은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로 유명한 베로나와 '패션의 도시' 밀라노, '물의 도시' 베네치아였다.
인천을 출발해 밀라노에 내린 나는 먼저 베로나로 이동했다.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인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Arena di Verona Opera Festival)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도 '아이다'는 몇 번 감상했던 작품이었지만 아레나(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으로 오늘날 오페라 극장으로 사용되는 곳)에서 직접 본 '아이다'는 거대한 무대와 웅장한 사운드 등으로 순식간에 나를 압도했다. 1913년 베르디의 '아이다'를 공연한 이후 매년 여름이면 이곳에서 약 3개월간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2천 년 전 지어진 야외 원형 극장에서 완벽한 음향으로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는 자체가 경이로웠다. 이 축제 기간 동안 인구 26만 명의 비교적 작은 도시인 베로나에 50만 명의 관광객들이 모여든다고 하니 이 축제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케 했다. 이 밖에도 베로나의 명소 '줄리엣의 집', 유유히 흐르는 아디제강(江)과 중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베로나 구시가지의 중심 아르베 광장까지 둘러보며 베로나는 그야말로 역사와 문화, 예술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도시 그 자체라는 걸 느꼈다.
다음으로 찾은 도시는 지난 7월 2일 대구시와 자매결연을 한 밀라노였다. 패션의 도시답게 세계 최고 디자이너들의 브랜드 본점이 즐비한 이 도시는 현대와 과거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한쪽을 보면 번쩍이는 명품 상점들이 가득하고, 또 한쪽으로는 아직도 오렌지색 트램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밀라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성당 두오모는 가까이에서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고딕 양식의 교회인 이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135개의 첨탑이 그 화려함을 더한다. 약 500년에 걸친 공사기간이 말해 주듯 두오모의 외부 벽면은 3천여 종류가 넘는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정면의 청동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외부와 달리 경건하고 소박한 성당의 내부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지막 여행 도시는 베네치아였다. 베로나 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 베네치아의 산타루치아 역에 내려 광장으로 나오면 민트색 돔의 피콜리 성당이 산뜻하게 관광객들을 맞는다. 라틴어로 '계속해서 오라'라는 의미를 가진 베네치아는 셀 수 없이 많은 나무 말뚝을 바다에 박고, 그 위에 건설한 도시이다. 그래서 물가에서는 어김없이 말뚝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로맨틱하고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도시, 베네치아 관광은 산 마르코 광장에서 시작했다. 이곳은 열주로 가득한 건물이 광장을 'ㄷ' 자로 둘러싸고 있는데 16세기경 정부청사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카페나 살롱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바이런, 괴테, 바그너 등이 자주 들렀다는 카페 플로리안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광장의 정면에는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산 마르코 대성당과 종탑이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산 마르코 대성당은 현재 한쪽 면이 보수공사 중이라 온전한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했다. 베네치아 대운하의 물줄기를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리알토 다리! 베네치아의 첫 번째 다리이자 아치 모양의 아름다움과 다리 위의 화려한 상점들로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명소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석조 건물에 시선을 빼앗겨 물어보니 그곳은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었다. 살루테는 '건강과 구원'을 의미하는데 1630년경, 도시에 창궐했던 흑사병이 물러간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베로나, 밀라노, 베네치아까지 길었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9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얻은 것들이 참 많다. 그동안 앞만 보고 급하게 달려오느라 무심코 지나쳤던 일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덕분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식견을 내 삶의 중심으로 깊숙이 담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의 사랑스러운 동행, 바로 내 딸 수지가 있었기에 낯선 타국에서도 외롭지 않고 행복했다. 미국 유학을 떠나 있는 딸이기에, 그리고 언젠가는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의 인생과 가족을 꾸려 나갈 아이이기에 이렇게 여행에서 같이했던 모든 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과 뜨거운 날씨에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은 이탈리아에서의 그 시간들이 벌써 그립다. 다시 찾을 때까지 아디오(Addio)! 이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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