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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천 년 전 혈연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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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승려 혜통은 출가 전 경주 남산 부근에서 놀다 수달 한 마리를 죽이고 뼈를 동산에 버렸다. 다음 날 그 자리에 가니 뼈는 없고 남은 핏자국을 따라가니 전에 살던 굴에 이르렀다. 그런데 뼈는 굴 속의 새끼 다섯 마리를 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충격으로 속세를 버리고 이름을 혜통으로 바꾸었다.'

'신라 재상 충원이 온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쉬는데 일행 중 사냥 좋아하는 이가 매를 놓아 꿩을 쫓게 했다. 놀란 꿩이 자취를 감추자 매 방울소리를 따라 우물가에 이르니 매는 근처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꿩을 찾으려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상처입은 꿩이 두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고 물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 가여운지 매는 감히 꿩을 잡지 못했다. 이에 왕은 절을 세워 영취사라 했다.'

일연(一然) 스님의 삼국유사에는 인간과 동물에 이르기까지 부모 자식 간 뜨거운 피를 나눈 정을 진하게 전하는 기록이 숱하다. 죽음에 이르거나 이른 뒤에도 새끼를 챙기는 수달과 꿩 이야기도 그 한 사례다. 또 남은 한 알의 알곡까지 챙겨 아들 공부를 위해 등 떠밀어 보내고 눈을 감는 홀어머니, 눈먼 딸 아이를 안고 간절한 노래로 빛을 찾아주는 어머니, 눈먼 어머니 봉양을 위해 품팔이에 나선 딸 이야기 등은 천 년 전 신라 백성들의 부모 자식 간 정경으로 그림 같다.

세속을 초월한 고려 승려 일연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9살에 출가했지만, 늙은 어머니를 모시려 대부분 삶을 군위, 달성, 청도, 포항 등 고향 경산 부근에서 맴돌았다. 권력자와 왕의 부름, 국존(國尊) 책봉 등으로 남해와 강화도, 왕경의 삶도 피할 수 없었지만 마음은 늘 어머니 곁이었다. 국존 자리를 버리고 개경을 떠나 78세에 95세 어머니를 모셨다. 96세 임종 후 군위 인각사에 머물다 84세 입적 때까지 인각사 주변의 어머니 산소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스님은, 노모 생존 때 깊은 밤 짚신을 삼아 팔아 양곡으로 바꿔 봉양한 중국 절강성 목주(睦州) 출신 승려 진존숙(陳尊宿)을 흠모해 자(字)를 목암(睦庵)으로 삼았다. 불교 경전으로 부모의 열 가지 은혜를 설파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실천하며 노모 모시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삼국유사에 옛 사람의 부모 자식 간 애틋한 사랑에 동물 사례까지 모아 남긴 뜻은 무엇일까? 연휴에 들리는 크고 작은 부모 자식 간 갈등, 국회의 '불효자방지법' 추진 같은 씁쓸한 이야기에 '슈퍼문'이라는 보름달이 되레 작아 보인 추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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