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유전자/데이비드 엡스타인 지음/이한음 옮김/열린책들 펴냄.
스웨덴의 높이뛰기 선수 스테판 홀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경쟁선수들에 비해 키가 작았음에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6세 때부터 20여 년 동안 피나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도 무슨 일이든 1만 시간 훈련을 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훌륭한 예다.
그러나 2007년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스테판 홀름은 바하마 출신의 높이뛰기 선수 도널드 토머스에게 졌다. 토머스는 우스꽝스럽게 허우적거리며 달려가 가로대를 넘었는데,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쳤다. 그는 높이뛰기를 시작한 지 고작 8개월밖에 안 된 초짜였다. 2007년 우승한 뒤 토머스는 직업선수로 전향했고, 훈련에 훈련을 이어갔지만, 그 후 6년 동안 단 1㎝도 기록을 경신하지는 못했다.
성공한 많은 사람은 자신의 성공 이유를 '열정과 노력'에 있다고 말한다. 이 책 '스포츠 유전자'는 '그런 말은 다 뻥'이라고 반박한다. 사람들이 노력한다고 모두 조용필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최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뛰어난 성공의 근거는 노력보다는 '유전자'에 있다고 말한다.
체스 선수가 마스터 수준에 오르는 데 걸리는 평균시간은 1만1천 시간이다. 그야말로 '1만 시간의 법칙'이 맞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스터 수준에 오르는 데 어떤 기사는 고작 3천 시간밖에 안 걸리고, 어떤 기사는 2만 5천 시간을 투자하고도 여전히 마스터 위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1만 시간의 2배를 투자해도 최고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이다.
지은이는 유전학을 통해 '연습의 효과는 타고난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타고난 능력에 훈련이 더해질 때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마켓 계산대 직원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지은이는 '간단한 작업의 경우 연습량에 따라 훈련 효과가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복잡한 일은 연습량이 많을수록 성취격차가 더 벌어진다'고 말한다. 재능이 부족한 사람도 오래 연습을 많이 하면 조금 나아지지만,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더 많이 나아진다는 것이다.
98개 가족을 표본으로 5개월간 고정 자전거 훈련을 한 결과 참가자들의 최대 산소 섭취량은 크게 달랐다. 상위 15%는 50% 이상 증가했는데, 하위 15%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최대 산소섭취량 증가 정도는 가족끼리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많이 증가하는 가족은 대체로 많이 증가했고, 거의 증가하지 않는 가족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일란성 쌍둥이는 놀라울 만큼 닮은 반응이 나타났다. 책은 '훈련을 통해 유산소 능력이 향상되는 정도의 약 절반은 오직 부모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올림픽의 모토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이다. 이에 걸맞게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세계 신기록이 나오고,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되는 지점은 계속 수정된다. 인간이 고작 1세기 만에 새로운 종으로 거듭났을 리는 없다. 따라서 스포츠 선수들의 이 같은 기량 향상은 종종 '노력의 결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말 그럴까.
1936년 전설적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는 10.2초로 100m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2013년 우사인 볼트는 9.77초로 새 기록을 썼다. 단거리 종목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 차이는 엄청나다. 그러나 이 책은 '우사인 볼트는 철제 발판을 이용해 출발하고, 합성수지 위를 달렸지만, 오언스는 정원용 삽으로 구덩이를 파서 출발지점을 만들었고, 에너지를 훨씬 더 잡아먹는 (불타고 난) 재 위를 달렸다'고 말한다. 우사인 볼트가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더 확장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곧 오언스가 볼트보다 더 빠르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남자 육상 1천500m의 경우 2000년 이후 아무런 기록 향상이 없었다. 우사인 볼트가 큰 폭으로 세계기록을 향상시켰는데 이를 단순히 '노력의 결과'로 한정한다면, 다른 선수들은 게으름을 피웠다는 말로 연결될 수 있다.
책은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여러 스포츠 종목, 선수, 성장환경 등을 제시하며 '탁월한 운동 능력을 갖추고 싶다면 자신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포츠 능력에 유전적 차이가 있음은 밝혀졌지만 정확히 어떤 유전자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489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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