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고 싶습니다."
16일 오전 매일신문사 편집국. 중절모를 눌러 쓴 노신사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1천만원권 수표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전성문(88) 옹. "매월 10만원씩 9년간 모아온 돈입니다. 매일신문이 잘 써주리라 믿고 찾아왔습니다."
전 옹이 매일신문사에 통일기금을 전달하기까지 사연은 특별하다. 그는 6'25 참전 용사로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꿋꿋이 일어서 아름다운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전 옹의 삶은 그의 회고록 '나의 갈 길 다가도록'(대구지방보훈청 제공)과 매일신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1950년 8월 15일 UN군에 입대한 전 옹은 일본 후쿠오카에서 훈련을 받고, 원산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그러다 1953년 3월 강원도 양양 전투에서 적의 기습을 받았다. 중대원 150명 중 130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이 전투에서 그는 적의 포탄에 오른쪽 눈을 잃고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전 옹은 명예제대 후 가정을 꾸리고, 경산 시내에 '성문당'이라는 서점을 열었다. 그의 이름을 딴 서점이었다. 조그만 리어카를 얻어 연탄 배달을 함께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배달하러 다니며 돈을 벌었다. 그렇게 10년간 일해 꽤 많은 돈을 모아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1989년 성문장학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3억여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31년 전인 1984년 매일신문은 '勇士(용사)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전 옹의 이 같은 인생 역정을 소개했다. '나라를 지키다 오른쪽 눈을 실명한 상이용사 전성문(57) 씨가 온갖 역경을 딛고 참된 부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기사화했다. 전 옹은 1965년부터 40여 년간 경산시 상이군경회장을 역임했고, 1988년엔 매일신문이 주최한 보훈대상을 받았다.
그의 아름다운 기부는 현재진행형이다. 2013년 경산시 장학회에 지역의 인재 양성을 위해 써달라며 1천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올해 5월에도 매일신문을 찾아와 "지진으로 고통받는 네팔을 돕고 싶다"며 100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전 옹은 회고록에서 "내 생이 다 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이 불러 이 세상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하늘 위로 올라가야 할 그 순간까지, 주어진 순간을 나를 위해, 또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라고, 그렇게 두 손 모아 기도한다"고 썼다.
매일신문은 전 옹이 전달한 1천만원을 통일나눔펀드에 전달했다. 전 옹은 20호 기부자로 지금까지 단체, 개인을 통틀어 대구경북에서 최고 금액을 기부한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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