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유승민 상가의 윤상현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통한다. 사석에서 박 대통령을 누님이라고 불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대통령의 정무특보로도 활동한 덕에 그는 친박(親朴) 중의 친박으로 분류된다.

그런 윤상현 의원이 지난 8일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가 차려진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상주인 유승민 의원을 조문하기 위해서였다. 윤 의원은 이 자리에서 큰 결례를 했다. 결례(缺禮)의 수준을 넘어서는 무례(無禮)를 저질렀다고 보는 이도 적지 않다. 친박 핵심이라는 사람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비판과 빈정거림도 터져 나왔다.

윤 의원은 이날 "공천에서 공정성만큼 중요한 것은 참신성이다. 지난번 총선 때도 TK에서 60%가량 물갈이를 해서 전체 의석이 과반수를 넘을 수 있었다"는 말을 했다. 내년 총선에서도 대구에서 물갈이를 대폭으로 해야 한다는 뉘앙스였다. 물갈이를 다 하든, 하나도 안 하든 그런 말을 하는 건 자유다. 입이 있으니 무슨 말을 못하겠나. 평소에도 돌출 발언으로 종종 평지풍파를 일으킨 인물이니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때와 장소는 가려야 한다.

문제는 이 발언의 장소가 유승민 의원이 상주인 상가였다는 점이다. 다른 장소라면 그보다 더한 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윤 의원의 발언은 문상객으로 상가에 와서 내뱉을 소리는 아니었다.

윤 의원이 말한 물갈이의 대상은 물론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벗어난 유 의원과 그와 가까운 몇몇 초선 의원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상식이다. 결국 윤 의원의 발언은 문상하러 와서는 천붕(天崩)의 슬픔을 참고 있는 상주를 욕보이고, 그 상가에 찬물을 확 끼얹은 셈이 됐다. 망자(亡者)인 유 의원의 부친, 유 전 의원에게도 예의가 아니었다.

또 일부 보도에는 윤 의원이 "TK에서 물갈이를 필승공천 전략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도권 민심까지 역풍이 불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물갈이야 그 지역 유권자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지 다른 동네(인천 남구을) 의원이 와서 남의 동네 물갈이를 하라 마라고 할 성격이 아니다. 또 수도권 역풍이 부는 것이야 수도권 공천을 잘못한 탓이지 어떻게 대구 물갈이를 못한 때문인가? 유권자인 대구시민들을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가. 누가 누구 말을 따라 하라는 말인가.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아니나 다를까. 윤 의원의 발언은 호된 비판을 받았다. 비박계인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하늘이 무너지는 데 비유를 할 정도로 슬픔이 큰데 그런 슬픔을 겪고 있는 빈소에 가서 상주한테 매질을 하는 것 같은 발언을 했다"고 꼬집었다. 매일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문상을 하러 간 자리 아니냐. 유 의원 부친상에까지 찾아가서 완전히 재를 뿌린 거 아닌가"라고 호되게 꾸짖었다. "경우가 없고 요샛말로 싸가지가 없다"고도 했다.

정치를 떠나 상식과 인간사 기본예절 측면에서도 윤 의원의 발언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인륜지대사라는 사례(四禮) 즉 관혼상제(冠婚喪祭) 예절 가운데 가장 중요시되고 엄격히 지켜지는 것이 바로 상례(喪禮)이다. 동양, 서양이 똑같다. 죽음 앞에서는 원도 한도 다 풀고 간다고 했다. 해원(解寃)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상주든 문상객이든 말도 함부로 안 하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대해야 한다. 적이라고 해도 휴전(休戰)을 한다. 그런 점에서도 윤 의원은 상주와 망자, 그리고 대구시민들에게까지도 사과가 필요한 잘못을 했다.

윤 의원의 발언을 다시 살펴보면서 '친박'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윤 의원이 정말 핵심 친박이라면 더 딱한 노릇이다. 박 대통령에게 누가 된 것은 물론 친박계 동료들의 품격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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