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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 '비운의 80년'…문서로 드러난 '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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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상용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독립운동 상징 1913년 매매계약서 첫 발견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1858~1932) 선생이 항일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자신의 생가인 '임청각'(臨淸閣'안동 법흥동'보물 제182호)을 팔았다는 구전을 뒷받침하는 '매매계약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전 재산을 나라 살리는 데 바친 석주 선생의 애국정신이 문서로 확인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임청각은 석주 선생 후손의 노력으로 소유권을 되찾은 상태지만 행정의 무관심으로 지금까지도 건물이 무허가로 남아 있어 독립운동 역사마저 망각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성 이씨 문중 후손인 이재업 유교문화보존회장은 최근 한국국학진흥원 임노직 목판연구소장에 의뢰, 자신의 집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고문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임청각 매매 관련 고문서 2장을 발견, 매일신문에 공개했다.

1913년 4월 1일 작성된 '계약서'와 같은 해 5월 21일에 만들어진 '계약증'은 임청각을 일본인 '오카마 후사지로우'(小鎌房次郞)에게 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임노직 소장은 "석주 선생의 아들이 가명으로 이창희 선생을 통해 일본인 오카마 후사지로우에게 집을 매각한다는 내용"이라며 "그동안 입으로만 전해지던 임청각 매각 사실을 확인해주는 첫 문서"라고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는 "석주 선생이 만주로 떠난 이후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임청각을 2천원에 팔았다. 집을 산 사람은 일본인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내용이 구전(口傳)으로 전해오고 있다.

고성 이씨 문중은 일본인에게 넘어간 종가를 되찾기 위해 모금을 펴 매각 2개월여 후 다시 사들였지만 이후 일제가 호적제를 시행해 석주 선생과 아들, 손자 등은 일제의 제도 편입을 치욕으로 여겨 이를 거부하면서 재산 소유를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임청각은 1932년 고성 이씨 집안의 다른 파(派) 주손 4명 앞으로 등기돼 가까스로 소유권을 찾았다.

광복 후 석주 선생 증손자인 이항증 광복회 경북지부장과 이동일 광복회 안동시지회장 등 고성 이씨 후손들은 다른 집안 소유로 돼 있던 임청각 소유권을 바로잡기 위해 소송 등 1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지난 2010년 8월 가까스로 기존 등기 말소처분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임청각은 새 주인 이름으로 등기되지도 못하고, 건축물대장도 만들지 못한 채 무허가 건축물로 방치돼 있다.

이항증 지부장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상징인 임청각 역사를 보여주는 매매계약서가 나온 만큼 이제 역사에 임청각 위상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건축물 대장도 없는 임청각이 무허가 건물이라는 오명부터 씻어내야 우리 독립운동사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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