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아파트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다가 벌어진 일이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어두워서 내 옆에서 같이 주차하고 있던 차의 범퍼 옆 부분을 스치고 말았다. 얼른 내려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차의 상태를 함께 확인했다. 부딪친 곳에는 내 차의 페인트가 조금 묻어 있었고 닦아내면 될 정도이겠구나 짐작하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을 때 접촉사고가 있었던 차가 그대로 있기에 다시 한 번 상태를 확인하였다. 그런데 그 차는 매우 노후된 차로 범퍼는 이미 여러 군데 접촉사고의 흔적이 있었고 움푹 들어가 녹이 슨 곳도 있었다. 나는 내가 접촉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닦으면 되는 정도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사고 차의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범퍼를 모두 교체하여 수리를 할 것이라는 통보였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누군가 부딪쳐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낸 흠집은 범퍼를 모두 교체할 정도가 아니던데 모두 교체를 해 달라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그러면 차를 박지를 말지 그러셨어요" 하는 거다. 나는 그녀와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범퍼 교체를 해 주는 것으로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물론 더 조심했어야 하는 나의 잘못이 가장 크다. 하지만 정직과 신뢰가 무너진 사고 후 처리 과정은 나를 매우 씁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보니 대부분 그렇게 하는 관행이라 하니 그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운전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운전면허증 하나만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배려와 여유의 미덕 또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분노 조절이 안 되어 운전대만 잡으면 한 마리 짐승으로 돌변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초보라 느린 운전자가 앞에 가면 뒤에 바짝 붙어 위협을 하거나 바로 앞으로 추월하여 급브레이크를 밟는 고약하고 악랄한 운전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조급증 때문에 교통체증이라도 생기면 경음기를 수시로 울리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차창을 내리고 폭언을 일삼는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상대방이 자신의 딸이고 아버지여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요즘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가 너무 쉬워져서 문제라는 여론이 많다. 운전의 기술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운전 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자기통제 능력을 발휘하는 기술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동차는 대단히 위험한 흉기로 변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조심운전, 방어운전을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훈련도 필요할 것이다. 또 사고 후 처리 과정을 좀 더 정교하게 체계화하여 사고를 당한 사람, 사고를 낸 사람 그 누구도 억울함이 없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모습, 그것이 바로 나의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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