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철학 공부 모임을 계기로 가까이 알고 지낸 누나 K가 있다. 30대 후반의 K는 어렵게 4년제 지방대 영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학습지 교사로 취업하여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K의 아버지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은 후 정신분열 증세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고, 어머니께서는 혼자서라도 남은 두 딸을 돌보기 위해 대구백화점 남문 쪽에서 고깃집을 운영했었는데 꽤나 장사가 잘되어 벌이도 괜찮았다고 한다. 그러나 건물주가 자신이 직접 식당을 운영하겠다며 나가라고 해 어렵게 자리 잡은 식당을 그대로 두고 나와야만 했다. K는 결혼을 목전에 두고 식을 치르지 못했다. 아버지의 병과 경제적 상황이 그 이유였다.
지난주 K가 위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문안을 갔더니 마침 의사가 조직 검사 결과를 K의 어머니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암이었다. K의 어머니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우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인도의 철학자 가야트리 스피박이 던진 화두가 떠올랐다. '서발턴(Subaltern)은 말할 수 있는가'
스피박이 말하는 서발턴(하위주체)은 누구인가? 열일곱 살의 부바네스와리 바두리. 그녀는 불륜으로 임신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게 되고 그것이 아니라 말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자 자신의 생리 기간에 자살을 선택했다. 스피박에 따르면 바두리는 살아서 말할 수 없었기에 '몸속의 문자소(文字素)'로 자신의 결백을 말해야 했다. 이 질문은 서발턴이 자신을 스스로 대변하지 못한다거나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발턴 자신의 처지를 대변할 제도적 정당화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겨냥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 자신도, 지식인들도 제대로 대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바두리는 '몸속의 문자소'(생리 중 자살)로 말할 수밖에 없었고, K 역시 '암'으로 자신을 대변할 수밖에 없었다. K가 살아온 삶을 내가 그전에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 쉴 새 없이 많은 말을 하는 K의 말은 내게 어쩌면 '말'이 아니었다. 이제서야 K의 '말'이 '암'이라는 문자소에 의해 들리기 시작한다. K 가족이 겪어온 부도-비정규직-정신분열-가족 내 남성의 부재라는 경험은 중산층, 정규직, 정상인, 남성만이 '말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 헤게모니를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라고 하지만 실상 말할 수 있는 이들은 특정한 조건을 갖춘 이들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민주주의하에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스피박에 대한 오독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서발턴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다만 우리의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 사이에 '암'이 자라고 있다. 고통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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