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3사에서 진행하는 시상식은 연말 안방극장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예능과 드라마, 그리고 가요계의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여 쇼를 펼치니 눈이 즐거워지는 건 당연지사. 여기에 스타들 간의 경합이 더해지니 보는 재미도 두 배가 된다. 관계자들과 언론 및 평론가들의 입장에서는 연말 시상식을 통해 각 방송사의 실적을 비교하거나 한 해 동안의 방송계 흐름을 되짚어볼 수 있어 좋다. 사실 연말 시상식은 단순한 축제나 쇼 이상의 의미가 있다. 화려한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방송사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스타들에게 상을 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며 후일을 기약하는 등 상업적인 목적까지 띠고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자사 시상식의 권위를 버리면서까지 공동 수상을 남발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정도로 이해를 하고 들어간다고 해도 지금 지상파 3사의 시상식은 과거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빛이 바랬다.
◆지상파 연기대상, 공동 수상에 부문별 쪼개기 남발
애초 지상파의 연말 시상식은 방송계 및 연예계 전반에서 그 나름의 권위를 자랑했다. '아무나 쉽게 받을 수 없는 상'이었으며 어떤 부문이든 한 차례 수상한 후에는 그만큼의 명예를 떨칠 수 있었다. 예외가 없는 한 각 부문별 수상자는 가장 뛰어나다고 꼽히는 1인에 국한됐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했고 수상자는 그만큼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드라마를 다루는 연기대상이든, 예능 프로그램을 다루는 연예대상이든 별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지상파의 연말 시상식은 세세하게 각 부문별로 상의 항목을 나누고 공동 수상을 남발하며 애초 그들이 자랑했던 권위와 거리감을 두고 있다. 지난 2015년 지상파의 연말 시상식은 특히 그랬다. 비지상파의 상승세로 인해 방송 인력들과 연예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이전과 다른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게 방송계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 듯 지상파는 스타들을 잡아두기 위해 눈치작전을 펼치며 각종 상을 남발해 '연말 기념품 증정식이냐'라는 말까지 들었다.
가요의 경우 이미 수년 전부터 시상식이 아닌 '축제'의 개념으로 바뀌었기에 일단 이번 글에서는 배제한다. 하지만 연기대상이나 연예대상은 지적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먼저, 연기대상을 살펴보자. 지상파 3사는 수년 전부터 연기대상을 실시하며 중편-장편-미니시리즈-단막 등으로 부문을 나눠 수상자 수를 늘려왔다. 각 부문별로 특성이 워낙 다르니 이런 시도에 대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것'이라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공동 수상을 남발하는 건 결국 '제 살 깎아먹기'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KBS는 2015년 연말 연기대상에서 '부탁해요, 엄마'의 고두심과 '프로듀사'에 출연했던 김수현에게 공동으로 대상을 안겨줬다. 두 명의 배우에게 대상을 안겨준 건 KBS로선 처음이다. 큰 히트작이 없었던 한 해였던 데다 아직 어린 김수현에게 대상을 준다는 게 그 나름 부담스러웠을 터. 하지만 김수현급의 톱스타를 잡아두긴 해야겠고, 그렇다고 KBS 본연의 정통성과 권위를 포기할 순 없어 고두심까지 대상 수상자로 끌어올리는 결정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SBS는 중편드라마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풍문으로 들었소'의 유준상과 '펀치'에 출연한 조재현에게 고루 안겨줬다. 이미 '부문별 쪼개기'가 세심해 '어지간하면 상 받는 거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 만한 상황에서 이뤄진 공동 수상이라 보는 이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날 대상은 '용팔이'에서 열연한 주원에게 돌아갔다. 인정할 만한 수상이지만 애초 외부로 알린 것처럼 대상 수상 후보 명단에 들어 있었다는 '펀치'의 김래원이 시상식 당일 갑자기 빠진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부추겼다. 또한, 특별연기상 부문을 굳이 만들며 '상을 나눠 준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MBC는 공동 수상 등이 없어 그나마 외견상으로는 나았다.
◆연예대상, 지상파 위상 실추 드러나
연예대상은 특히나 심했다. MBC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히트작 하나 내놓지 못한 두 개 방송사의 경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상식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중에서도 KBS 연예대상은 '어떻게든 행사나 치르고 보자'라는 뉘앙스가 강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이휘재에게 대상을 안겨주면서 후보로 '우리동네 예체능'의 강호동, '불후의 명곡'에서 활약하고 있는 신동엽 등을 올려뒀는데, 사실상 자사 예능 프로그램 중 그나마 '잘된 놈'들을 모아둔 수준이었다. 사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올해까지 인기를 유지했던 이유는 송일국과 세 아들때문이었는데 이휘재에게 상을 준다는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이미 같은 프로그램으로 상을 받은 신동엽을 제외하고 나머지 후보들은 프로그램 자체가 크게 이슈가 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이 이휘재에게 상을 준 듯하다. 물론, 이휘재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충분히 큰 상을 받을 만하지만 여러모로 이번 시상식의 결과는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지간하면 이휘재 본인마저 "당분간 인터넷 댓글을 보지 말아야겠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을까.
SBS는 '런닝맨' '동상이몽-괜찮아 괜찮아!'의 유재석과 '정글의 법칙' '주먹쥐고 소림사'의 김병만에게 대상을 나눠 줬다. 이 역시 명쾌하지 못한 결과다. 유재석이나 김병만이야 대상감으로 손색이 없지만 지난해 두 사람의 프로그램이 대상을 받을 만큼 선전한 건 아니다. 유재석의 '런닝맨'은 6%대까지 추락했고,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는 4%대에서 고전했다. 김병만이 출연했던 '정글의 법칙'이 10% 중반을 유지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주먹쥐고 소림사'도 6~7% 수준으로 지상파의 기존 인기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에 미달했다.
예능 부문에 있어 MBC는 그마나 지상파의 체면을 살려주는 역할을 했다. 사실 MBC는 지난해 지상파 3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히트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방송사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복면가왕' 등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내놓고 방송계에 파장을 일으키는가 하면 '진짜 사나이'도 현실감과 출연자들의 훈련 강도를 높여 호평을 들었다. 시청률이 6%대에 그쳐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소위 '오타쿠'라 불리는 이들을 전면에 부각시킨 '능력자들' 역시 참신한 시도로 호응을 얻었다. '무한도전'의 변치 않는 인기 역시 한몫 톡톡히 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기획으로 내놓는 프로그램마다 줄줄이 실패했던 KBS, 어설픈 카피로 현상 유지에 급급했던 SBS와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며 예능국의 힘을 과시했다.
대상 수상 후보를 유재석과 김구라로 압축한 것이나, 최종적으로 올해 '능력자들' '복면가왕' '라디오스타' '마이 리틀 텔레비전' '세바퀴' 등 다수 프로그램의 주축으로 활동한 김구라에게 상을 준 것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았다. 버라이어티 부문 수상자를 두 명 이상 선정하는 등 공동 수상을 남발하고, 굳이 뮤직-토크쇼 부문을 만들어 김성주에게 최우수상을 주는 등 상을 고루 분배해 아군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나치게 드러나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단기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배우와 가수에게 상을 안겨주며 '앞으로도 우리 함께'라는 무언의 계약을 제안하기도 했다.
사실 올해 지상파 3사 중 어느 쪽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강호동과 유재석 등 예능계 톱스타들까지 비지상파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니 보다 더 철저하게 스타들의 정서 관리에 치중할 수밖에 없을 터. 이 때문에 가슴 졸이며 한 명의 수상 후보를 응원하고 발표 후 감격에 겨워 눈물 흘리는 수상자를 보는 재미는 없어졌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