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청소

"저는 국민학교도 다녀 보지 못했고…일가친척 하나 없이 15살에 소년 가장이 됐습니다. 기술 하나 없이…사환으로 들어가 마당 쓸고 물 나르며 회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55년 강원도 평창의 가난한 화전민 집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김규환이란 소년은 뒷날 우연한 인연을 계기로 옛 대우중공업에 입사했다. 그것도 겨우 잡부(사환)였다. 그가 시작한 일은 바로 빗자루를 들고 공장 마당을 쓰는 청소였다. 새벽 출근과 청소 등 잡일을 마다 않은 성실성과 부단한 노력으로 명장(名匠)의 반열에 오른 그가 책(어머니 저는 해냈습니다)과 여러 강의에서 고백한 삶의 이야기다.

일찍부터 불교와 유교에서는 청소를 허투루 보지 않았다. 청소는 티끌과 때를 닦는 심신 수련 과정이었다. 머리는 우둔하고 잘 잊지만 남의 신발을 닦으며 수행한 끝에 부처의 뛰어난 제자가 된 주리반특가도 청소로 깨달았다. 우리 조계종과 연관되는 중국의 조계 혜능 스님도 그렇다. 글도 모르는 가난한 나무꾼인 그는 8개월 동안 방아를 찧으며 쓸고 닦는 온갖 허드렛일로 보내며 깨달음에 이르렀다. 빨래와 방 청소 등을 직접 하며 2003년 입적한 청화 스님 이야기 등 불가의 사례는 넘친다.

유교 역시 여러 서책에 청소 이야기를 남겼다. 바로 '쇄소응대'(灑掃應對)이다. 쓸고 물 뿌리고 응대하는 일이다. 즉 청소로 심신을 닦는 기본으로 삼고자 한 뜻이다. 이황과 조식 두 뛰어난 학자에 얽힌 '청소' 사연도 있다. 이황과 기대승이 편지로 지루한 이기(理氣) 논쟁을 벌이자 조식은 이황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금 학자들을 보면 물 뿌리고 마당 쓰는 법은 모르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논쟁이 비현실적임을 '청소' 이야기로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대구에서 최근 남구청이 '쇄소응대'라는 표지석을 쌈지공원에 세우고 구청의 구호로 삼았다고 한다. 환경을 깨끗하게 정비해 기본에 충실하자는 각오를 담았다는 이야기다. 안철수 국회의원은 5일 새벽 거리 청소로 한 해를 시작했다. "새로운 정치, 깨끗한 정치 실현을 위해 청소 활동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새 당을 만들어 낡고 썩은 정치를 청소하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청소는 필요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하찮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다른 삶의 계기이고 수행자에게는 심신의 티끌과 때를 닦는 수양의 과정이기도 하다. 제대로 청소되는 올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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