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4개월. 필자가 포항에서 근무한 기간이다. 함께 부대끼던 주당(酒黨)들, 그리고 과메기, 죽도시장, 영일대해수욕장…. 잊지 못할 추억이 많다. '사람은 행복할 때 시계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했으니 그리 길지도 않은 세월이었던 것 같다.
포항에 발령받은 때가 2011년 8월 말이었다. MB 정권은 레임덕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영포라인'(영일 포항 출신 인사)은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던 시점이었다. 포항에는 '3대 권력'이란 말이 회자하고 있었다. 포항 사회를 암중에 이끌어가는 '이상득 의원' '포스코' '교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필자는 소위 '3대 권력'이 변화'쇠퇴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 해도 기자로서는 행운이었다.
당시 이상득 의원을 만나러 가니 지구당 사무실 앞 주차장이 한산했다. 누군가가 얼마 전만 해도 이 의원이 내려오면 방문객으로 인산인해를 방불케 했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며 씁쓰레한 표정을 짓던 기억이 난다. 이 의원은 처음 만난 필자에게 1시간 가까이 영일만 신항만, 포항~울산고속도로 예산을 따온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표정이 무척 진지했다. 다음해에 19대 총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형님으로서 온갖 권세를 누렸고 6선이나 했으면 됐지, 왜 그리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정치 상황이 확 바뀌어 총선 출마를 접어야 했다. 그는 2012년 1월 포항상의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며 포항을 떠났고, 그해 7월 비리혐의로 구속됐다. 인생무상, 권력무상이 아니던가.
또 다른 핵심인 포스코는 MB 정권과 함께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2010년 5조원에 달하던 영업이익이 2012년에는 2조7천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정준양 회장과 이상득 의원 측 또는 특정 기업인의 유착'특혜설이 끊이지 않았다. 방만한 투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정 회장 귀에는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포스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기업'인사들이 대부분인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는가. 정 전 회장이 재임한 5년간은 포스코에게는 고난의 시기였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지나갔고, 현재 포스코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철강 관련 기업의 20% 정도가 부도 직전에 놓여 있을 정도로 포항 경제는 엉망이다.
교회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당시 국회의원 2명, 포항시장 모두 개신교 신자였고, 국장급 공무원 상당수도 대형 교회에 다녔다. 대학, 대형 병원도 개신교 계통인 데다 교계 인사들의 입김이 엄청났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행세를 못한다고 했으니 정장식 전 시장이 '성시화' 선언을 한 배경을 짐작할 만했다. 요즘 대형 교회 여러 곳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한다. 빚을 내 교회를 신축했기 때문이다.
소위 '3대 권력'이 쇠퇴하면서 '물 좋은 시절'도 함께 지나간 것 같다. 현재 포항에는 절망감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필자를 포함해 그 누구도 포항이 이 정도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포스코의 부진 탓이지만, 새로운 리더십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칙칙한 이미지의 '3대 권력'이 사라졌으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탈출구를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포항 사회가 밝고 긍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세력'단체를 찾아야 하는 것도 큰 과제다.
포항은 언제나 역동적인 도시였다. 바다와 산업을 갖고 있는, 강점이 많은 도시다. 1960년대 후반 고 박태준 전 회장이 백사장에서 포스코를 시작한 것처럼, 그런 '돌격정신'이 그리워진다. 포항이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으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포항분들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못했지만 이 지면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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