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신(新)정읍사

나는 요즘 남편의 분가를 준비하고 있다. 남편 직장의 이사로 인한 물리적 이유 때문이다. 경북도청이 50년 산격동 청사 시대를 마감하고 2월 경북 북부, 안동'예천 신청사로 이전을 하게 된다.

아이의 유치원 시절, 선생님께서 "아빠 회사가 어디니" 하고 물었을 때 도청을 지나며 입구에 크게 걸린 '어서 오이소' 문구를 기억해 "우리 아빠 회사는 '어서 오이소'예요"라고 했고, 그다음 해는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라고 대답했단다. 도청의 산격동 시대는 이러한 도정의 화두들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구호로 신도청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고등학교, 중학교 입학을 앞둔 두 아이의 진학 문제, 나의 직장생활 등의 이유로 우리 가족은 안동으로 이사를 갈 수 없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하루 세 시간을 출퇴근 시간으로 쓰면서 위험한 고속도로 운전을 하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지난주 도청 신청사 주변으로 방을 구하러 가게 되었다.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사이에 위치한 경북도청 신청사는 검무산을 배경으로 한옥의 멋을 잘 살려 웅장하게 잘 지어져 있었다.

반전세로 어렵게 구한 원룸으로 남편을 분가시키기 위해 밥솥, 이불, 식기, 세제 등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만큼 마음도 복잡하다. 직장맘이라 회사일로 퇴근이 늦을 때 혼자 있는 아이는 어떻게 할지를 비롯해 고등학생이 되는 딸아이를 밤늦은 하굣길에 데리러 갈 일,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 관리 등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평일에는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남편 역시 혼자 사는 것이 처음인 만큼 식사와 빨래의 불편함과 퇴근 후의 외로움을 견뎌야 할 것이다.

대구에서 출퇴근을 하는 직원들은 이른 새벽 출근 대열에 시달려야 하고 이사 간 가족들은 정주여건이 갖춰지기 전까지 불편함을 겪을 것이다. '세베리아'로 불리기도 하고 주말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유령도시가 되었다는 세종 신도시 입주 초기의 시행착오를 도청 신도시 또한 겪게 될 것이다. 도청 신청사 이전은 국가 균형발전 정책의 대의가 있기에 공무원 가족으로서 그 정도의 불편함과 어려움은 감내할 것이다.

다만 좋은 입지와 좋은 기운을 가진 신도청 도시에서 혼자 사는 직원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외로움을 달래는 것으로 시간을 소진하기보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이나 취미를 살려 자기 발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생활문화가 싹트기를, 정주여건이 하루빨리 갖추어져 사람 냄새 나는 활력이 넘쳐나기를 바랄 뿐이다.

2월부터 나는 행상 나간 남편을 걱정하며 '정읍사'를 부른 백제 여인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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