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나는 주말부부로 살면서 홀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다. 2012년 6월 6일 현충일, 날짜까지 기억나는 날이다. 휴일이었지만 하루 만에 대구를 다녀오기도 곤란했고, 국회는 휴일이라 사람이 없었다. 점심 끼니를 때울 겸 숙소를 나섰다. 가히 원룸촌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천국' 간판을 단 김밥집을 찾았다. 김치찌개를 시켜 한 숟가락 떴을 때, 20대로 보이는 연인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사건은 그들이 등장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내 뒷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말했다. "오빠~ 오빠도 나랑 만나기 전에 저 아저씨처럼 혼자 밥 먹었어?" 속삭이듯 한 말이었지만 내 귓가엔 엄청 큰 소리로 울렸다. 그리고 이어진 남자의 말은 더 큰 아픔이 됐다.
"미쳤어? 불쌍해 보이잖아. 난 집에서 라면 끓여 먹지, 혼자 식당은 안 와." 남자의 말을 듣고 나니 찌개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빠, 그러니까 나 만나서 좋지?" 이어지는 연인들의 대화는 나를 이방인처럼 만들었다. 반도 먹지 못한 밥숟가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절대로 혼자 식당에 가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작년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고 대구로 돌아왔다. 바쁘게만 살다, 최근 특집부로 부서 이동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바로 온 가족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는 날이 생긴다는 것이다. 퇴근 후 늦은 시간에 시작해야 하는 저녁이지만, 가족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내가 혼자 밥 먹고, 힘들게 버텨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내 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집에 중요한 서류를 두고 출근했다. 출근길 자동차 핸들을 돌리면 늦어질 것 같아, 점심시간에 잠시 집에 들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보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리 집 식탁에 초등학생 딸이 혼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 방학 때 맞벌이 부부의 자녀는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그날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딸도 맞벌이 부부의 자녀인 것이다.
직접 보기 전엔 잘 알지 못한다. '넌 따뜻한 집에서 밥을 먹으니까. 엄마, 아빠가 아침에 반찬도 다 세팅해놓으니까. 좋아하는 반찬을 엄마가 꼭 갖춰두니까.' 그래서 혼자 먹는 밥이어도 딸은 쓸쓸하지 않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내가 갑자기 들어오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 좋아하는 딸의 얼굴을 보고 알았다. 딸도 나와 같았다. 혼자 먹는 밥은 덜 즐거웠던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혼자 밥을 먹는다. 일 때문에 바쁜 직장인, 방학인 맞벌이 부부의 자녀, 주말부부, 가족들을 출근시킨 주부. 다소 외롭지만 우리가 혼자 먹은 밥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나를 성장시키고, 대한민국을 지켜낸다. 오늘 혼자 먹는 밥은, 내일 함께 먹는 밥의 소중함을 알려줄 것이다. 혼자 밥 먹는 아픔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병신년(丙申年)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