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결혼한 지 36년. 그러나 난 집안 지출 내역을 모른다. 결혼하고 처음엔 가계부를 내가 썼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은 그날 따라 하루가 고되었는지 내가 지인의 축의금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화를 내며, 며칠 전 생활비로 30만원을 줬는데 또 돈 얘기를 하느냐고 했다.
돈이 없다는 게 아니고 축의금 얘기를 하는데 화를 내어 나 역시 화를 냈다. 그리고 돈 30만원 준 지가 언젠데 하며 생각해보니 일주일 전이었다.
그깟 30만원이 뭐 큰돈이라고 화를 내며 생색을 내는가 싶어, 안 한다고 가계부 안 쓴다고 하며 일주일간의 30만원에 대한 내역서와 잔금을 남편에게 넘겨줬다.
내역서와 잔금을 주면서 일주일 전에 30만원을 줬으면 그 30만원이 그대로 있느냐고, 공과금이며 아이들 식대도 나가지, 그리고 나를 위해서는 100원도 안 썼으니 잘 보라고 외쳤다. 남편이 가계부를 적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난 공장에도 다니며 때론 농사지은 것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지만, 월급이나 수입을 세어보지도 않고 남편에게 넘겼다. 반찬도 사다 주는 것으로만 조리를 해먹었다. 어디다 어떻게 돈을 쓰는가도 묻지 않았고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엔 아버지께 용돈 타기가 어렵다며 엄마가 돈 관리하면 안 되겠냐는 걸, 미안하지만 잘 말씀 드려 많이 타라고 했다.
그리고 난 내가 돈을 만지지는 않지만, 어쨌든 뭘 자꾸 사기 위해 돈을 쓰는 건 싫었다. 웬만하면 사지 말고 모으기를 바랐지만 남편은 나와는 달리 필요 이상으로, 아니 내가 보기에는 필요 이상 같지만 꼭 필요한 것은 사는 사람이다. 난 꼭 필요해도 어지간해선 안 사는 편이고.
그런데 며칠 전엔 추우니 입으라고 점퍼를 사왔다. "꼭 할머니 옷 같은 걸 돈을 그렇게 많이 주고 사와? 나 같으면 그 돈 주고 이 옷 절대 못 사겠다"라고 속으로 말했지만 겉으론 고맙다고 했다.
돈을 그렇게 많이 줬다는 건 구두쇠인 내 생각이지 실제는 몇만원짜리이다.
오늘은 늘 새벽에 일을 나가다 보니 감기에 걸려 병원 가려다 그냥 매운 생강차 마시고 이불 쓰고 누워 있는데, 꿀을 한 병 사들고 들어왔다. 또 돈 쓴 것이 싫지만 고맙게 생각하기로 했다. 씀씀이도 모르면서 나가서 다른 데 안 쓰고 날 위해 쓰니 얼마나 고맙냐며 좋게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니 진정 남편이 고맙게 여겨졌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달콤한 꿀 생강차를 마시고 누우니 감기가 저 멀리 도망가는 느낌이 든다.
이봉섭(상주시 청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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