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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護國)의 메아리<7>-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우수상

"나는 이 자리에 그냥 있다가는 그들에게 붙잡힐 것 같아 전차에 기어올랐다. 그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총을 잡은 나의 왼손이 오른편 어깨 위로 넘어갔다. '아, 당했구나. 내 손은 괜찮은가' 하고 손을 흔들어보니 왼쪽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왼손에 낀 장갑을 벗으려니 그사이 피가 엉기고 부어올라 손이 빠지지 않았다."

11. 태천(泰川)의 비운

박천까지 후퇴하여 전력을 정비한 우리는 다음 작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박천을 공격개시 지점으로 정해 11월 24일 오전 10시를 기해 대녕강(大寧江)을 건너 태천으로 진격하였다. 적의 저항은 경미했으나 이튿날인 11월 25일부터는 맹렬한 반격을 해와 태천의 남쪽 야산지대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었다. 우리는 공격개시 이튿날 10㎞를 진격하여 태천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지까지 진출, 태천시내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때 태천시내를 거쳐 우리에게 투항해온 중공군 한 명이 있었다. 생포하여 보니 우리말은 하나도 몰랐다. 다행히 취사반에서 일하는 류 하사가 중국에 오래 있었다기에 대화를 시켜보니 그는 중공군의 중국인이 아니고 일본인이라 했다. 또 그는 포로가 아니라 자수하여온 귀순자임을 강조하였다.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우리를 보고 절대로 태천시내에 진입하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태천시내를 둘러싼 묘향산(妙香山)의 지맥인 산속에 2개 사단의 병력이 우리의 시내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했다. 아군이 진입하게 되면 산중의 중공군이 일거에 포위공격하려 한다고 일러 주어 작전수행에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진격에 힘입었던 우리는 왜 진격령이 내리지 않은가 답답하기도 했다. 한가한 날이 연속되고 있는 어느 날 전차부대를 찾아 그로든 대장에게 물어보았다.

"왜 우리는 진격하지 않은가?(Why no march onward we?)"라고 물으니 그는 "아직 명령이 없다(yet still not order)"고 하면서 나를 한참 훑어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의 미군들이 내 옆으로 모여들었다. 모두 나를 보고 "오, 한국군. 제1의 군인(Oh, Korean soldier No1 soldier)"라면서 칭찬해 주었다. 부대로 돌아와 무기수입을 하고 있을 때 미 공군 폭격기가 태천시내 주변을 맹렬히 폭격하고 있었다. 아마도 귀순한 중공군의 정보에 따라 폭격이 가해지는 듯 보였다. 폭격이 끝난 그날 저녁,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전방소대의 병사들이 몰려왔다. 전방의 중공군이 대거 공격해 온다 했다. 그날이 채 끝나기도 전에 후퇴해 오는 아군과 위장한 중공군이 한데 뭉쳐 몰려오고 있어 방어사격이 어려웠다. 전차중대의 한중간에는 추위를 피하려는 미군들이 놓은 장작불이 성하게 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전차중대장은 나에게 빨리 불을 끄고 위치를 보호하라고 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미군들은 모두 전차 속에 들어가 전투준비를 하고 있고 밖에 남은 자는 한국인 나 하나뿐 이었다. 급히 삽으로 흙을 떠서 퍼부어 불을 끄고 나니 주변에 아군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전차에는 무수한 중공군이 달려들어 수류탄을 던지고 있었다. 공격해온 중공군도 옆에서 어정거리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전차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 그냥 있다가는 그들에게 붙잡힐 것 같아 전차에 기어올랐다. 그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총을 잡은 나의 왼손이 오른편 어깨 위로 넘어갔다. '아, 당했구나. 내 손은 괜찮은가' 하고 손을 흔들어보니 왼쪽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왼손에 낀 장갑을 벗으려니 그사이 피가 엉기고 부어올라 손이 빠지지 않았다. 그 후에 전차를 향해 던지는 적의 수류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날이 밝자 미군이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고 중대로 돌아오니 중대장이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너, 살았구나 다른 사람은?" 하였으나 나를 따라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대로 돌아와 소대장과 분대장을 안고 나는 한없이 울었다. 나와 함께하던 전우는 모두 밭고랑을 지나다 중공군의 창에 희생되고 생환자는 3명밖에 없었다."

떼를 지어 오르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전차의 상위분 머리를 한바퀴 획 돌리면 기어올랐던 적은 와르르 나가떨어지는 통쾌함, 미군은 이렇게 적을 물리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전차에 있을 수 없어 전차 아래로 내려와 아군을 찾았으나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중공군은 바로 내 옆에까지 와서도 내가 한국군인 줄 모르고 있었다. 같은 중공군이 변장한 것으로 아는지 나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부대를 잃고 홀몸이 된 나는 중대장, 소대장을 목이 터지도록 불러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적의 집단지를 달아나는 수밖에 없었다.

미군들은 모두 전차 속에 들어가고 홀로 찬바람 몰아치는 들판 위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니 멀리 북두칠성이 깜박이고 있다. '저쪽이 북쪽이구나' 생각한 나는 홀로 반대방향인 남쪽을 향해 무조건 뛰었다. 얼마를 달리고 있을 때 전차가 굉음을 내며 남쪽을 향해 길을 밝히며 달리고 있다. '우리 전차가 아닌가' 하며 그 뒤를 따라 달렸으나 얼마 안 되어 지쳐버렸다. 점차 어둠이 앞을 가려왔다. 전차는 연이어 후퇴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전차가 가는 곳을 따라 계속 달렸다. 총탄은 끊임없이 나의 앞뒤를 스치고 있으니 어디에 구조를 청할 것인가. 아득하기만 했다.

어둠은 깊어가고 달리는 다리의 힘도 줄어간다. 그때 전차가 또 내 곁을 지나갔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 전차마저 놓치면 나는 어디에 구원을 요청할 것인가. 아득하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달리는 전차에 구원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지나간 대수를 헤아려 짐작하니 거의 다 빠져나가고 2, 3대만 남은 것 같았다. 하는 수없이 달리는 전차에 손을 들고 정지를 요청했다. 전속력으로 내 옆을 스치는 전차는 못 본채 달렸다.

'나를 도울 사람. 나를 구할 사람은 없었다. 정말 이대로 죽어야 하는가'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해서 이 위기를 벗어날까 하는 단 한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라는 생각이 들 즈음 한 대의 전차가 굉음을 내면서 오고 있었다. 나는 무조건 눈을 감고 도로 복판에 서서 양손을 높이 들고 달리는 전차의 앞길을 막았다.

전차는 속력을 줄인 채 나의 앞에 서면서 앞문을 열고 권총을 나의 가슴에 댔다. 미군이 권총을 내 가슴에 겨누면서 "누구야"(Halt)라고 소리쳤다. 나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은 채 군인이란 소리만 외쳤다.

전차 속의 미군은 이해가 되었는지, "오 한국군"(Oh, Korean Soldier. Korean)을 외치면서 "타라. 빨리빨리"(Get on, Hubba Hubba)라고 했다. 나는 숙달된 솜씨로 전차 위를 나는 듯 뛰어올랐다. 나를 태운 전차는 전속력으로 미군의 집결지에 달려갔다. 어둠이 얇아진 이른 새벽 전차를 마중나온 미군들이 손을 흔들며 반겨 주었다. 마침 전차 위의 나를 발견하고 "오, 한국군인 수고 많았다"(Oh, Korean Soldier. working Hard)고 하면서 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어느 미군병사는 자기의 힘자랑을 위해 나를 한 손으로 받쳐들고 빙빙 돌기도 했다. 이렇게 우의를 다지면서 귀환의 환영을 해주었다. 날이 밝자 미군이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고 중대로 돌아오니 중대장이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너, 살았구나 다른 사람은?" 하였으나 나를 따라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대로 돌아와 소대장과 분대장을 안고 나는 한없이 울었다. 나와 함께하던 전우는 모두 밭고랑을 지나다 중공군의 창에 희생되고 생환자는 3명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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