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중국의 참전과 1'4 후퇴를 고비로 전황이 급변하자 맥아더는 중국과의 대대적인 한판을 노렸다. 그는 만주에 원자폭탄 투하를 요구했으나,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해 맥아더의 위험한 도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맥아더는 1951년 3월 24일 '북진 명령'을 내렸다. 대통령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에 트루먼은 4월 11일 맥아더를 해임했고, 4월 19일 맥아더는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며 조용히 은퇴했다.
사실 미국민들에게 '너무' 인기 있는 맥아더는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1936년 루스벨트가 그를 필리핀 군사고문으로 임명한 것은 내치기 위한 노림수였다. 그러나 일본의 참전과 6'25전쟁은 70세 노(老)장군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뒤를 이은 트루먼도 맥아더를 경계했다. 맥아더가 사단장일 때, 트루먼은 겨우 소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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