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즐겨봐요, 봄 꽃길] 배꽃·홍매·이팝나무 꽃길

이곡동 배나무 가로수는 세인트웨스튼호텔부터 성서산업단지역에 이르는 약 500m 구간 중앙분리대에 조성되어 있다. 지난주 이곡동 배꽃 길 현장에 들렀을 때 푸른 잎새 사이로 하얀 꽃망울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대구에서 홍매를 보려면 화원 본리리 인흥마을이 최고 포인트다. 남평 문씨 세거지 앞 공터엔 수령 20~30년 남짓 홍매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달성군 옥포면 교항리(다리목마을)에 가면 대구 유일의 이팝나무 군락지가 있다. 이곳엔 수령 100~200년 된 노거수 32그루가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채 마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봄 정취를 노래한 시 중 이조년의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시조만 한 게 있을까. 배꽃의 서정으로 춘정(春情)을 노래했으니 봄밤 낭만은 이 시 한 편으로 족하다.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에 가면 배꽃 가로수가 있다. 흰 꽃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달성군 이팝나무 군락지도 마찬가지다. 우린 이팝나무를 보며 식용(밥)과 감상(예술) 사이에서 착각을 하기도 한다. 소박한 멋에서 벗어나 농염한 색채에 눈을 두고 싶다면 홍매가 멋을 부린 인흥마을로 향하면 된다.

◆이곡동 가로 수놓은 배꽃 물결

옛날 와룡산 밑자락은 전부 배나무 과수원이었다고 한다. 배실, 배골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성서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과수원은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다. 배나무 가로수는 세인트웨스튼호텔부터 성서산업단지역에 이르는 약 500m 구간 중앙분리대에 조성되어 있다. 지난 25일 이곡동 배꽃 길 현장에 들렀을 때 푸른 잎새 사이로 하얀 꽃망울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배꽃은 꽃이 먼저 올라오는 진달래와 달리 잎도 함께 돋는다. 연둣빛 잎과 하얀 꽃의 조화는 은은한 첼로 이중주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배꽃은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고 해바라기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삼경(三更)에 은한(銀漢'은하수)으로 젖어들 듯 은은하게 우리 마음을 적신다. 주부 임명란(49'달서구 이곡동) 씨는 "배꽃 가로는 낮에 와도 아름답지만 달밤에 보는 이화(梨花)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고 말한다. 개화 4월 초~중순.

◆선홍 꽃의 유혹 인흥마을 홍매

봄의 정염을 얘기할 때 홍매(紅梅)만큼 어필하는 것도 드물다. 핑크빛보다도 더 요염한 선홍 꽃잎은 꽃말처럼 '기품' 있고 '고결'하다. 선조들은 매화를 '화귀'(花魁'꽃의 우두머리)라고 불렀고 매화를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해서 의미 있게 여겼다. 대구에서 홍매를 보려면 화원 본리리 인흥마을이 최고 포인트다. 남평 문씨 세거지 앞 공터엔 수령 20~30년 남짓 홍매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양 청매(靑梅)들 틈에서 빨갛게 꽃을 피운 홍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감상자를 흥분시킨다. 문화유산 해설사 백운영(69) 씨는 "인흥마을 홍매는 마을의 특징 있는 볼거리를 고민하던 문태갑 선생이 20여 년 전부터 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홍매는 마지막 정염을 불사르고 있었다. 홍매 진자리에는 청매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며 봄을 재촉하게 될 것이다. 개화 3월 하순.

◆쌀밥을 향한 염원 달성 이팝나무

꽃과 밥은 나란히 배치하기에 어색한 조합. 꽃이 예술과 감성의 형이상학적 영역이라면 밥은 본능적, 생리적 욕구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꽃밥'을 회화의 소재로 쓰고 있는 화가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작품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꽃과 밥의 경계에서 교묘한 이미지로 만나는 것이 있다. 이팝나무다. 전통시대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던 시절 쌀밥에 대한 염원이 이 꽃에 투영되었던 것이다. 민초들은 나무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을 보며 허기를 달래곤 했다. 달성군 옥포면 교항리(다리목마을)에 가면 대구 유일의 이팝나무 군락지가 있다. 이곳엔 수령 100~200년 된 노거수 32그루가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채 마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하얀 꽃이 절정을 이룰 때는 마치 눈이 내린 듯, 밥알을 뿌려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춘궁기 고달픈 추억이 있는 세대라면 교항리 꽃그늘에서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4월 하순에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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