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텃밭과 터앝

사태의 파장이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을 때 흔히 '심상찮다'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뜻의 '심상하다'에서 비롯한 말이다. 이 말의 어근인 '심상'은 원래 고대 중국에서 길이를 잴 때 쓰는 단위다. 심(尋)은 8척, 상(常)은 그 두 배인 16척을 뜻한다.

좌구명이 역사서 '춘추'에 주석을 붙인 '춘추좌씨전'에서 보듯 각 지방을 차지한 제후들이 몇 길도 안 되는 작은 땅(尋常)을 놓고 서로 싸웠다고 해서 심상은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결국 심상찮다는 것은 어떤 일이나 사태가 예사롭지 않고 그 파장이 생각보다 훨씬 클 때를 일러 쓰는 표현이다.

4'13 총선이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요즘 각 정당마다 지지 기반인 텃밭의 분위기가 이전과 같지 않다며 걱정하는 분위기다. 언론도 새누리의 영남과 더민주의 호남이 흔들린다거나 민심 균열 조짐이 우려된다며 연일 보도했다. 대구 판세만 봐도 새누리당 우세 지역구는 현재 총 12곳 중 절반인 6곳 뿐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과 헤게모니 다툼에 대한 유권자의 시선이 그만큼 곱지 않다는 소리다.

그런데 텃밭에 대한 정치권의 믿음은 사실 그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정치권은 당선 확률을 따져 텃밭이라고 우기지만 지역 유권자가 원하는 공공이익을 충실히 대변해 얻은 결과나 기득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정치행위에 대한 신뢰와 그 보답으로 텃밭처럼 굳어졌다면 몰라도 선거가 내포한 관성의 법칙이나 울며 겨자먹기 성격이 짙다면 이는 터무니 없는 발상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텃밭을 '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이라고 풀이한다. 터는 땅이나 자리, 기반 등의 뜻으로 텃새'텃세 등 쓰임이 다양하다. 텃밭과 달리 집 울타리 안에 있는 작은 밭을 일컫는 우리말은 '터앝'이다. 터앝은 텃밭보다 권리 개념이 더 분명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선거를 앞둔 현 시점에서 새누리당은 대구경북을 제대로 가꾸지도 않고 텃밭으로 여기는 것도 모자라 아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터앝으로 마냥 착각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텃밭은 곧 고정표'라고 굳게 믿어온 여야 정치권의 기대가 미련이든 오산이든 간에 유권자들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번 총선 만큼은 민심을 거스르는 정당정치에 대한 따끔한 불침(火針)이 되어야 한다는 게 지역 유권자의 지배적인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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