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회초리

개구쟁이였던 어린 시절, 종종 사고를 치곤 했다. 불장난을 하다 가재도구를 태워 먹는가 하면 막걸리 심부름을 하다 주전자에 담긴 술을 훔쳐 먹고선 맹물로 채우기도 했다. 늘 막내를 귀여워했던 아버지도 사안의 경중이나 사고의 횟수에 따라 장롱 위에 숨겨놨던 회초리를 꺼내 들곤 했다.

엄한 아버지를 두려워하다가도 회초리를 든 아버지의 얼굴에 '혹 애가 아프지는 않을까'하는 찰나의 고민이라도 보일라치면 괜히 소리 내 엄살을 부리곤 했다. 잠든 후 멍이 든 종아리에 미제연고를 발라주시던 아버지의 손가락에 잠이 깨도 괜한 설움에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난 지금 아버지의 참사랑이 무척 그립다.

이번 총선 기간 내내 새누리당을 바라보는 대구 시민들도 철없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대구는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에게만 금배지를 허용했다. 자식 같은 새누리당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베풀어 온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한구 사태로 불리는 공천 파동에 이어 존영 논란, 옥새 투쟁 등을 바라보면서 모진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만 살려달라'는 읍소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 12곳 중 4곳을 야당과 무소속 후보에게 주었다. 31년 만에 정통 야당 국회의원을 탄생시키고 대신 무한 애정을 보냈던 새누리당을 혼냈다.

새누리당이 자초한 일이다. 대구에 대한 오만한 공천 행태는 인내심을 한계에 이르게 했다. 유승민'주호영 의원의 공천 배제를 비롯해 전략적인 돌려막기 공천 등 민심을 배제한 공천에서 대구의 민심과 이익의 대변은 어디에도 없었다.

쪼그라들고 있는 살림살이에 아량을 베풀 여유마저 없었다. 대구의 형편은 심상치 않다. 높은 집값도 모자라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전셋값 때문에 현재는 물론 미래 소비까지 포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퇴직 베이비붐 세대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골목상권에서 전쟁 중이고 교육비는 경제 활성화의 암초가 된 지 오래다. 경제 성적표도 항상 꼴찌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992년 이후 22년째 전국 최하위다. 반면, 청년실업률은 11.4%로 전국 2위다. 아파트값 상승률'가계부채 증가율도 전국 2위다. 지난해 대구경북 상장사 영업이익이 15조원이나 감소하고 올 들어 수출이 6조원이나 줄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도 지역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광주의 삼성전기 전장 부분,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세종시의 국회 이전, 인천의 공항 배후단지 개발 등 타지역이 부자 될 궁리를 하는 동안 대구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들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묘안도 명쾌한 공약도 내놓지 못했다. 기껏 선거 막판에 '10대 대기업 유치', '파티마 병원 인근 대동맥 도로 건설 공약' 등을 내세웠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공약이란 핀잔을 받았다. 구체적인 로드맵도 없었다. 신공항 등 지역민이 염원하는 공약은 아예 내놓지도 못했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이번 결과는 어쩌면 새누리당에 대한 시민들의 마지막 애정일 수도 있다. 새누리당이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반성할 때 비로소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대구는 이미 차선책을 찾아 놓은 상태다. 김부겸'홍의락 등 그동안 조금씩 잎을 틔우던 새싹들이 선거를 통해 봄날의 꽃처럼 환하게 피어올랐다. 대구 시민들로서는 현명한 선택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해졌다.

봄꽃은 이제 거의 졌지만 대구경북의 봄날이 더욱 화창해 보인다. 지역의 미래를 맡길 인재가 어느 때보다 많아서다. 새누리당과 야당 정치인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 같은 섣부른 예감도 든다. 아무쪼록 이들이 봄날처럼 따뜻하고 새로운 희망이 움트는 정치를 보여주길 바란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