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교사로서 상담을 한 학생의 성장을 3년간 지켜보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3월 학기 초 어느 날 1학년 한 학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학부모님 집의 학생이 학교에 적응을 못 해서 실업계로 전학을 가고 싶어 하니 학생을 불러 상담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그 어머님의 요청대로 학생을 불렀다. 그 학생은 대인관계가 별로 없고 조용하며 말이 없는 편이었다. 중학교 때 성적은 나름대로 상위권이었다. 본인에게 어떤 문제가 가장 힘든지 물어보았다. 답변이 꽤 철학적이었다. 왜 사는지 모르겠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였다. 그래서 실업계로 진학을 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일반계고로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학생들은 그 나름대로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성실성을 가지고 있으나 부모와의 진로 갈등으로 인해 무기력증에 빠진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부모와 학생 간의 진로갈등을 원만하게 풀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우선 학생의 그림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깊이 있게 질문해 들어갔다. 그림이라면 좋아하는 분야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학생은 그림 중에서도 조선의 민화에 관심이 많다고 하였다.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A4용지를 가지고 와서 학생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민화를 그려보라고 하였다. 잠시 뒤, 종이 위에는 호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것도 아주 귀엽고 생동감 있게 말이다. 눈 모양과 꼬리에 대한 표현이 전문가처럼 느껴졌다. 칭찬을 듬뿍 해주었다. 학생은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아마 자신감도 생겼을 것이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먼저 그림은 대학에 가서도 그릴 수 있다는 관점의 변화를 유도하였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미술 관련 대학교의 학과로 진학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홍익대의 1단계 선발이 내신만으로 이루어지며 2단계에서는 미술활동보고서 평가, 3단계에서는 면접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려주며, 내신관리와 수능 최저대비, 미술 관련 교내외 활동을 병행해야 함을 인식시켰다.
그 이후 학생은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생활하였다. 일과 중에 한 번씩 볼 때마다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이후 3학년이 되어서 수시에 홍익대 디자인학부에 원서를 제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생 나름대로 철학적 소양과 한국 민화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학생은 자기 나름대로 진로에 대한 욕구가 있다. 그 욕구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면 진로 설계를 위해 진로교사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특히 고1과 같은 진로 선택기에 진로교사와 인연을 맺어주면 장기적으로 학생의 진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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