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가명·4)는 숟가락보다 컴퓨터 마우스가 더 익숙했다. 민우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던 엄마, 아빠는 민우가 돌이 될 때부터 휴대전화를 손에 쥐여주었다. 민우는 만 4세가 되도록 '엄마' '아빠' 외에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걷는 건 또래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손을 세밀하게 움직이거나 뭔가를 찾는 건 잘 하지 못했다. 단 5초도 가만히 있지 못할 정도로 주의가 산만했고, 원하는 게 있으면 누군가를 때리거나 꼬집는 식으로 표현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자기 머리를 때리거나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며 자해하기도 했다. 결국 민우는 병원에서 '발달지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들의 성장 발달은 성인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과거에는 발달이 늦어도 '늦되는 아이'라며 다 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 자녀 가정이 늘고 부모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발달지연을 의심하며 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아이는 괜찮은데, 부모가 별나다?
발달지연은 특정 질환이나 장애는 아니지만 제 나이에 맞게 이뤄져야 할 여러 가지 발달이 늦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발달 선별검사에서 정상적인 수준보다 25% 이상 뒤처져 있는 상태로 대운동과 미세운동, 인지 기능, 언어 기능, 사회성과 일상생활 중 2가지 이상이 지연된 경우를 '전반적 발달지연'이라고 한다.
발달지연은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 5세 이후에 발달지연 진단을 받을 경우 치료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후 3~6개월은 젖을 잘 빨고 잘 움직이면 감각이나 언어, 인지 기능 등에 이상 징후가 있더라도 감지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만 3세가 지난 후에야 말이 늦다거나 인지 기능이 떨어져 병원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아이들의 발달 상태를 확인하려면 영유아 건강검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제때 받으면 뒤늦게 아이의 발달지연을 깨닫게 되는 실수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과도한 컴퓨터 게임, 발달지연 불러
발달지연이 나타난 아이들은 여러 기능이 복합적으로 늦는 경우가 많다. 언어 기능이나 운동 기능 중 한 가지만 지연되는 경우는 드물다. 말이 늦는 아이들은 언어 기능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이나 정서적인 문제가 있거나 부모와 아이 사이의 유대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걷는 게 늦다거나 뒤집기를 제때 하지 않는 아이들은 운동 발달 외에도 다른 감각 기능이나 언어, 인지 기능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뇌신경 발달에 큰 문제가 없는데도 산만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점점 자랄수록 말이 늦거나 인지 기능이 또래들보다 떨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 환자 중 상당수는 컴퓨터나 모바일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한 경우다. 아동기에는 스스로 탐색을 하기보다는 모방을 통한 학습이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공격적인 내용의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공격적이고 산만한 경향을 많이 보이게 된다. 또 아동기에는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두 손으로 다양한 조작 기능을 훈련하는 것이 인지 발달에 매우 중요하지만 버튼만 조작하는 컴퓨터 게임은 이런 훈련에 소홀해지기 쉽다.
◆치료와 재활 통해 호전 가능
병원을 찾은 민우는 발달 과정에서 앉기나 서기 등 큰 동작들은 정상이었지만 무언가를 조작하거나 찾는 등의 손의 기능 수준은 1년 이상 늦다는 진단을 받았다. 특히 언어는 3년 가까이 지연돼 있었다.
다행히 뇌신경 분석에서 민우는 언어신경의 발달이 약간 더딜 뿐, 신경 발달은 큰 손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민우의 발달지연은 환경적인 원인이 더 클 가능성이 높았다.
민우는 우선 컴퓨터 게임 시간을 줄였다. 또 민우가 소리를 낼 때마다 부모가 적절하게 응대를 해주도록 했다. 부모 교육도 진행됐다. 엄마, 아빠는 민우와 함께 4세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을 함께 갖고 놀면서 노는 방법을 가르쳐주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이는 불과 한 달 만에 훨씬 차분해졌다. 민우는 인지 기능과 언어 기능 치료를 위한 재활치료를 받은 끝에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여러 가지 기능 지연이 동시에 오는 경우가 많고, 정도가 심해 보여도 성인에 비하면 뇌가 변화하는 폭이 크다"면서 "조기에 진단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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