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지 않는 법/ 조던 엘렌버그 지음/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펴냄
'수포자'('수학이 너무 어려워 수학 공부를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의 신조어) 시대다. 지난해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박홍근 국회의원은 고교 성적 양극화 문제의 주범으로 수학 성적을 언급했다. 박 의원은 초'중'고교생과 수학교사 등 9천21명을 조사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36%, 중학생의 46%, 고등학생의 59%가 수포자였다. 또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2014년 수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수능 점수 30점 미만을 받은 비율은 국어 과목의 경우 4.6%에 불과했지만, 수학 과목의 경우 34.1%나 됐다. 두 과목 다 100점이 만점인데 30점 미만을 받았다면, 풀다 보니 어려워 그만큼 틀렸다기보다는 풀 엄두도 못 내 아예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왕따를 당한 것도 아니고, 친구나 선생님이나 부모로부터 맞은 것도 아니다. 수학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청소년기에 좌절을 맛본 것이다.
이런 세태만 보면 수학은 대다수 사람에게 쓸모없는 학문이다. 수학 말고 생활에 필요한 셈법만 익히면 될 일이다. 수학적 지식이 필수적인 분야에 종사할 사람만 수학을 전문적으로 배울 일이다. 배움이 곧 즐거움이어야 할 시대에 수학은 배우면 배울수록 고통스러운 학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수학적 사고를 키울 것을 강조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으로 건너간 '아브라함 발드'라는 오스트리아 출신 통계학자가 있었다. 미 공군은 비행기에 철갑을 효과적으로 두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철갑이 무겁기 때문에 제한된 양만 필요한 부위에 둘러야 했다. 군 장성들은 '유럽에서 교전하고 돌아온 전투기들을 부위별로 살펴보니 총알 구멍이 동체에는 많았고 엔진에는 적었다'는 내용의 통계를 발드에게 건넸다. 그렇다면 동체에 철갑을 집중해 둘러야 하지 않을까.
발드는 이 통계를 다르게 봤다. 동체에 총알을 많이 맞은 전투기가 많이 돌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동체는 튼튼하다는 말이다. 통계 수치를 단순히 양적으로만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엔진에 총알을 적게 맞은 전투기는 볼 수 있었지만 엔진에 총알을 많이 맞은 전투기는 보기 어려웠다. 엔진이 터졌으니 아예 돌아오지 못했다는 얘기다. 집계되지 않은, 보이지 않는 통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드는 전투기 엔진에 철갑을 집중해 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공군은 곧장 발드의 주장을 적용했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도 따랐다. 발드는 수학으로 단련된 사고로 군 장성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볼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책은 선거, 언론보도, 금융, SNS, 복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선택을 하게 만드는 수학적 사고의 실체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 복권 얘기를 좀 더 해 보자. 이 책을 포함해 지금껏 수많은 사람이 밝힌 복권의 실체는 '손해 보는 내기'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복권은 티켓 판매 수익의 일정 비율을 국가가 가져가도록 설계된 사업"이라고 했고, "복권은 바보들에게 물리는 세금"이라는 옛말도 전해진다. 그런데도 복권의 인기는 세계 어디서나 꾸준히 높다. '임종' 모형을 적용해 보자. 임종 때 복권 구입에 쓴 돈 때문에 돈을 그만큼 덜 갖고 죽게 된 것을 후회할까? 아닐 것이다. 반대로 복권에 당첨돼 평생을 부유하게 보낸 것을 잘한 선택으로 여길까? 그럴 것이다. 무엇보다도 복권 구입은 당첨되든 말든 사소하나마 재미있는 일이다.
복권과 비슷한 기댓값이 나오는 분야가 사업이다. 떼돈을 벌 지극히 작은 확률, 그럭저럭 사업을 이어나갈 중간 정도 확률, 돈을 몽땅 날릴 상당히 큰 확률을 저울질해 보면, 기댓값은 복권처럼 0보다 작은 수가 나오기 일쑤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사업은 추진되고, 덕분에 우리 사회는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로 풍요로워진다. 복권 수익금도 사회를 위해 쓰이기는 마찬가지다.
수학적 사고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 내지는 적게 실수하며 살기 위해 분명 필요하지만, 또한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수학적 사고의 중요성은 알고 있으나 수학에 너무 집착하는 우리 교육 현실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수학 공식 달달 외워 문제집 풀고 풀고 또 풀고 시험 치고 치고 또 쳐야 한다. 그렇게 수학 점수는 올릴지 몰라도 수학적 사고는 빈곤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수학 교육은 분명 문제 있어 보인다. 616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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