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풍향계

이덕규(1961~ )

꼬리지느러미가 푸르르 떨린다

그가 열심히 헤엄쳐가는 쪽으로 지상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그 꼬리 뒤로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사라져가는

 

초고속 후폭풍(後爆風)의 뒤통수가 보인다

그 배후가 궁금하다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문학동네. 2003)

시인이 말하듯이 우리에겐 가 존재한다. 모든 일상을 속도로 반응하는 현대인의 삶의 뒤통수에 대고 시는 후려친다. 우리는 스마트폰 덕에 일 분 안에 남의 나라 전쟁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산다. 사람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보고 싶은데 다운로드에 짜증이 생긴다. 지진으로 인해 마을이 가라앉는 장면을 보기 위해 좀더 일찍 퇴근하고 싶어 미칠 것 같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총을 들고, 우리의 아이들 역시 게임 속에서 생존을 위해 무기를 사 모으고 있다. 우리는 장바구니와 동맹을 맺었고, 가상은 현실보다 연대감이 깊다. 그나마 SNS는 우리 삶의 환풍기다. 하루에도 수십번 씩 드나드는 이 환풍기가 없으면 우리는 숨이 막혀버릴지도 모른다. SNS로 누군가에게 숨소리를 전달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일 슬로 보트를 타고 메콩강을 따라 여행하다가 문득 이 상실감의 배후를 추척하다 보면 언젠가 당신의 사인은 의문사가 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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