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아재부터 찾는다." 정부 부처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대구시 고위 공무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풀어쓰면 이렇다. 중앙정부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서 같은 매뉴얼이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서를 꼼꼼히 만드는 일보다 지역 연고의 아재를 찾는 데 열심이다. 그리고 전화부터 한다. 일이 풀리도록 하는 데는 인맥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아재는 친족 호칭이 아니다.
지난 3월에도 아재 이야기가 들려왔다. 대구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영진 대구시장이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대구시장이 시민들의 바람을 담아 건의를 하는 거야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한국문학관은 국제대회 유치가 아니다. 여러 도시에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고 대구도 그중 한 도시다. 그런 때에 공모 절차도 밟기 전에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선물부터 요청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지 않겠나. 유치가 결정되고 난 뒤에 아재부터 찾았다는 사실을 털어놔도 될 텐데 말이다.
아재 이야기는 4월에도 쭉 이어진다. 1천 명이 넘는 매머드급으로 국립한국문학관 대구유치위원회가 만들어진다. 다른 도시와는 달리 광역시 차원에서 유치위 활동을 하려다 보니 모양새가 중요했던 듯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전직 대구시장과 전직 대구시교육감이 공동위원장이다. 아무래도 원로인 그분들의 권위만큼이나 중앙의 인맥 활용을 염두에 뒀음 직하다. 게다가 4'13 총선 당시 지금은 당선자가 된 야당 후보에게 철 지난 색깔론을 꺼냈던 인물도 티 나는 자리를 맡았다. 야당 당선자는 도움을 줄 만한 아재가 아니라고 여겼던 탓일까.
사실 대구는 아재를 찾지 않더라도 한국문학관 유치 자격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난 1997년 '문학의 해'를 맞아 문화관광부가 근대문학 100주년 기념관 건립을 거론했을 때부터 후보지로 손색이 없었다. 근대문학의 태동기부터 민족시인 등을 배출한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에서도 대구는 늘 문학의 옹골찬 줄기를 놓치지 않았다. 6'25전쟁 때는 한국문학의 맥을 잇는 구심적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런 기운이 쌓여 대구문학의 자양분이 되었다. 지리적 접근성 등은 차라리 부록에 불과한 셈이다.
400억원을 훨씬 넘게 들여 짓는 한국문학관은 그저 그런 문학역사관이 아니라고 한다. 도서관이나 박물관 기능까지 더한 문화복합관이다. 문학의 역사와 현재'미래를 아우르는 공간이다. 이는 자칫 박제화될 수 있는 고만고만한 기념 건물의 의미를 넘어선다. 덩그러니 남은 건물과 드문드문 찾는 방문객들에게 기대어 존재 의의를 찾는다면 얼마나 초라해지겠는가. 한국문학관을 유치하려는 대구의 문학도시 비전이 아재를 찾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의 독서 열기는 날이 갈수록 식고 있다. 대구 시민들 역시 해마다 책 읽는 양이나 시간이 줄고 있다. 학교의 도서 구입비를 줄이는 등 행정기관마저 책 읽는 도시와는 엇박자다. 한국문학관을 유치하려는 비전 중에는 제대로 된 문학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을 것이다. 책 뒤쪽을 가리키며 뒷북 행정이라고 웃고 마는 아재 개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면 아재는 대구만의 즐겨찾기가 아니다. 마구 드러내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인기 품목이다. 최근에 또 불거진 전관 변호사의 일탈을 봐도 그렇다. 친분은 그들만의 리그를 이어주는 매개다. 말하자면 아재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따라서 아재의 힘을 빌려 한국문학관이 대구에 오기를 기대한들 이상할 게 없다. 다만 그 아재는 언제까지 우리 곁에 머물까. 만일 부산의 아재가 나타난다면. 그제야 아재 찾기는 불공정하다고 목소리를 높일지 모른다. 유효기간이 머지않았다. 그때까지는 큰소리쳐도 된다.
"아재부터 찾는 게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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