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자율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이 아닌 만물들을 기계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이성에 따른 자유 의지의 유무에서 찾았다. 기계는 원인이 주어지면, 그에 따라 결과가 정해지지만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배트로 야구공을 친다고 할 때, 야구 배트는 내가 힘을 준 원인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배트에 맞은 야구공은 맞은 위치, 배트의 속도와 같은 원인에 의해 운동 방향이 정해지게 된다. 내가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배트가 제멋대로 움직일 리는 없고, 배트에 맞은 공이 알아서 담장 밖으로 날아갈 리도 없다.

반면에 인간은 똑같은 공이 온다 하더라도 번트를 댈 수도 있고, 배트를 크게 휘두를 수도 있다.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유 의지라는 것도 기계처럼 프로그램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공부하느냐 노느냐의 갈림길에서 노는 쪽을 선택한 자유의지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 자체가 노는 것을 좋아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남 핑계 대는 것을 좋아해 공부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도 결국 유전자라는 원인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하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고 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을 하는 일을 뜻하는 '자율'이 화두가 된 뉴스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자율' 주행 자동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고, 하나는 경기도 교육감이 야간 '자율' 학습을 폐지하고 대안적 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자율이라는 말을 사전적으로 정의하면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일. 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일"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순수하게 '자율'로 야간에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하라고 하면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남아서 공부할 학생들은 얼마 되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는 이유로 공부할 의지가 없는 학생들에게까지 강제로 하라고 하고, 선생님들은 자신의 생활을 포기하고 학교에 남아서 감독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은 야간 자율 학습 문제로 학생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겪고. 감정을 소모하는 경우도 많다. 기계는 점점 더 자율을 배워가고 있는데, 인간은 자율의 의미마저도 잊어버리고 있는 모순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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