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미화 칼럼] 정치가 끝장난 후…

대립과 정파적 이익만 앞세우는

정치가 더 이상 나라를 이끌지 못해

위기마다 나라 살린 대중 깨어나야

정치적 중립 논란을 불러일으킨 제1야당 출신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 파행이 마무리되고, 제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100일 일정이 시작됐다. 여소야대 20대 국회의 100일 일정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야당들이 공조하여 5대 주요 현안에 대해서 공동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진상규명 및 피해보상' 문제에 대해서 별도 특위를 구성하고, 청문회를 열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정운호 게이트도 마찬가지이다. 부패한 법조인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정운호 게이트는 공평과 정의의 금도를 지켜야 할 율사들이 얼마나 전관예우의 달콤한 독(毒)을 탐닉하고, 검은 돈이든 흰 돈이든 그저 많이 벌면 된다는 천민성(賤民性)에 중독되어 있는지 그 바닥을 드러냈다.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조인은 우리나라 상층부를 이루는 '위세고위직군'의 대표 부류 가운데 하나이다. 힘과 권력을 지닌 법조인이 높은 자리까지 탐하면서 요즘은 여의도 입성은 물론 내각과 청와대에도 율사 비중이 상당히 높다. 율사들의 권력 중심부 진입은 많아지는데 역설적으로 나라는 더 엉망이 되는 현실은 반드시 끊어야 할 딜레마이자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우리 사회는 사시 패스에만 매달린 율사보다 더 세상을 넓게 보고, 더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으며, 풍부한 감성과 판단력을 지닌 인재가 수두룩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황무지이던 우리 산하에 산림녹화운동을 해야 한다고 건의하여 관철한 이는 산업화 방책을 낸 경제학자 남덕우 총리이다.

그외 야 3당이 정기국회에서 청문회를 추진하는 백남기 씨 사건은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 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 진압으로 쓰러진 농민 백 씨가 200일째 의식불명인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가는 하루빨리 의식을 되찾아 가족 품으로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최대한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날 시위를 본 전 국민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마스크를 쓴 시위대가 철제 사다리로 버스 위 전경들을 쑤셔댔으며, 경찰 버스는 맥없이 끌려다녔다. 출동한 경찰 129명이 부상당했고, 차량 52대와 장비 231점이 파손됐다.

야 3당은 과격한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센 물대포를 쏜 공권력의 책임을 따지기 위해서 청문회를 연다. 경찰이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왜 물대포를 쏠 때마다 물량과 방향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디지털 제어판을 쓰지 않았냐고 따지겠다는 것이다.

이런 청문회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더 이상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 정치판은 지나치게 당리당략과 포퓰리즘에 빠져 있다. 표만 긁어모을 수 있다면 사기라도 칠 기세이고, 유권자가 원한다면 돈이든, 복지든, 안보든 막 내주는 게 버릇처럼 됐다. 포퓰리즘에 젖어 있는 정치권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봉착하고 있는 덫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역사가 오랜 서구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민주 역사는 짧고 새로운 역사의 동력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위험하다. 우리 대(代)에 남미처럼 추락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제는 깨끗하게 살고, 남의 것 탐내지 않고, 나라를 살리겠다는 소명 의식과 국가관을 가진 '말 없는 다수'의 의식이 살아나야 한다. 그저 눈치만 보는 '말 없는 다수'는 우리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말 없는 다수'가 '힘센 소수'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그들이 동조 세력으로 쉽게 전락하는 한계 때문이다. 포퓰리즘에 젖은 정치권이 당리당략과 분열을 넘어 나라를 살리는 제 역할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위기에서 항상 앞장서 나라를 살려냈던 민초들의 의식이 살아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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