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와 디자이너가 만났다. 무대를 화폭처럼 꾸몄다. 그 위에서 사군자가 춤으로 번진다. 과거 선비들의 멋과 여유가 느껴진다. 혼탁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면서 실은 부러운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먹(墨, 먹 묵)을 배어낸 무용수들이 몸짓으로 풍기는 향(香, 향기 향) 때문이다.
이 향은 무대와 관객은 물론, 과거와 현재도 연결한다. 바로 전통예술을 불러낸다. 그런데 한국무용이나 사군자라는 전통예술을 '뻔하게' 재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작품이 공연되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최현묵 관장은 "전통예술에 대한 계승과 발전의 필요성은 항상 느끼지만, 현시대의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우리 춤의 전통적'미학적 요소들을 세련되고 개성 있게 구현한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국립무용단의 '묵향'이다. 30일(금) 오후 3시30분과 8시, 두 차례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공연된다.
◆안무가와 디자이너가 함께 재창조한 한국무용
'묵향'에서 주목해야할 인물 3인이 있다. 한국무용가 윤성주(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패션디자이너 겸 아트디렉터 정구호, 그리고 군자무로 유명한 한국무용가 최현(1929~2002)이다. 이 작품은 최현의 군자무를 윤성주와 정구호가 합작해 현대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사군자(매'난'국'죽)를 뜻하며 사계절도 표현하는 전통춤, 스타일리시한 한복 의상, 그리고 정가와 산조를 재구성한 음악 등 여러 요소를 작품에서 조화시켰다.
작품의 면모는 제작을 맡은 두 사람의 이력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윤성주는 살풀이춤과 종묘제례악(일무) 이수자다. 또 전통춤을 비롯해 신무용, 발레, 창작춤 등 다양한 춤 언어를 구사하는 안무가다. 정구호는 패션 말고도 인테리어, 조명, 공연, 영화 등 폭 넓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다. 아무래도 '묵향'에서처럼 한복 의상 디자이너로 활약해 온 이력이 가장 눈길을 끈다. 정구호는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황진이'로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 대종상영화제 의상상을 수상했다.
'묵향'은 2013년 12월 초연 이후 해외 여러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프랑스리옹예술축제, 홍콩예술축제, 일본오사카NHK홀 등에서 공연됐다. 이번에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주관 '2016방방곡곡사업 국립단체우수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선정돼 처음으로 대구에서 공연된다.
◆조화를 위한 충돌의 미학, 춤만큼 매력적인 음악
'묵향'은 모두 6개 장으로 구성됐다. ▷서무 ▷매 ▷난 ▷국 ▷죽 ▷종무 순이다. 거문고, 가야금, 해금, 대금 등 한국 전통 악기와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등 서양 전통 악기가 우리 몸짓과 어우러져 각 장마다 사군자, 사계절, 선비 등의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특히 마지막 장인 종무에서 휘몰이 장단의 가야금과 바이올린의 스킬 연주가 복잡한 하모니를 이루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가야금과 바이올린이 충돌하듯이, 이 작품에서는 내내 동양과 서양이, 음과 양이 만난다. 이러한 충돌 다음 순서는 조화다. 각자의 빛을 발하던 순간이 지나고 조화로움을 찾는 순간이 바로 '묵향' 그 자체다. 자기 본연의 색이 고스란히 드러난 다음, 새로운 조화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S석 1만5천원, A석 1만원. 053)606-6133, 5.
◆10월 4~6일 '인 대구, 가을무용축제'
국립무용단의 '묵향' 대구 공연은 10월 4일(화)~6일(목)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는 '인 대구, 가을무용축제'의 문을 여는 역할도 맡는다. 강정선 대구무용협회장이 예술감독을 맡은 이 행사에는 대구시립무용단, 대구시립국악단, 김용걸댄스시어터, 장유경무용단, 안병주춤이음, 고블린파티, 크누아무용단, 우혜영뮤발레단, 이은주무용단, 그리고 특별히 모인 대구의 젊은 남자무용수 20인 팀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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