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밥은 먹고 다니니?

보름 정도, 밥을 잘 먹지 못했다. 다이어트 방법 중에 마음고생만 한 것이 없다더니 당연히 살이 내렸다. 덩달아 기운도 달렸다. 밤이면 잠을 자는 것인지 기절을 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몸이 허해졌다. 고작 열닷새 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솔직히 그 어떠한 일에도 우리는 밥을 생략할 수 없다. 연인을 떠나보낸 날에도, 생업을 잃은 날에도, 심지어 아버지를 묻은 날에도 결국엔 먹게 되어 있다. 그런 내 모습이 한심스럽고 구차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수밖에 없다. 대체 밥이 아니고 무엇이 삶을 버티게 해준다는 말인가.

위에 밥이 없는 상태인 공복(空腹)은 인간의 존엄과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우선, 공복이 인간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배가 고파서 도둑질도 하고 배가 고프기 때문에 동냥질도 한다. 오죽하면 속담에 '공복에 인경을 침도 아니 바르고 그냥 삼키려 한다'는 말이 다 있겠는가. 인경(人定)이 무언가. 아주 큰 종이다. 얼마나 크냐 하면, 보신각에 매달린 1만8천근짜리 종이 바로 인경이다.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거의 11t에 달한다. 그런데 그 종이라도 뜯어 먹어야겠다고 덤빌 정도라니, 공복이란 얼마나 무지막지한 고통인가. 해서 도(道)를 완성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어렵게 극복해야 하는 원초적인 욕구 또한 바로 식욕인 것이다.

게다가 지나친 공복은 건강에도 좋지 않다. 사람 몸의 감수성을 논한 조사가 있었다. 장기(臟器)와 뇌는 감수성 면에서 그 예민한 때가 구별되는데 장기의 감수성은 낮에, 뇌의 감수성은 밤에 높아진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활동 시간인 낮의 공복은 때때로 사람의 몸을 위험한 지경으로 몰고 가기도 하며, 무리한 절식이나 단식은 치명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라는 의학전문학술지의 발표에 의하면 동물은 배가 고플 경우 일을 배우고 기억했던 신경세포가 차단되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도 동물이다. 간혹 허기에 정신을 놓친 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에서다.

건강과 존엄, 이런 식의 접근이 아니어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밥에 대한 신념이 있게 마련이다. 적어도 아침에는 반드시 국을 먹어야겠다든가, 하루 한 끼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고기를 먹어야겠다든가, 평생의 끼니를 풀로만 이어가겠다든가, 아니면 그게 무엇이든 주는 대로 먹겠다든가, 그런 것들 말이다. 누가 간섭하겠는가. 제 몸이 편한 것을 찾다 보니 생겨난 벽(癖)인 것을. 나는 그저 다만, 그 모든 끼니에 마음의 평안이 함께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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