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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그리고 언제나, map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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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유독 길치가 많다. 오랫동안 그들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모종의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들은 길보다는 특정 장소와 요소에 더 관심이 많고, 그들 주변에는 늘 내비게이션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다리를 못 쓰는 사람이 한 몸을 이뤄 같이 다니는 것처럼, 그들은 제 짝을 잘도 찾아 함께 다닌다. 그리고, 내가 그 내비게이션 같은 존재다.

나도 처음부터 길을 잘 찾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수학 다음으로 '지리'였고, 지도는 늘 암호처럼 보였다. 그랬던 내가 '인간 내비게이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건 '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지도 그리기 훈련 덕분이다.

대학 시절, '문화지도' 그리기 작업에 참여하면서 캠퍼스가 이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나무 몇 그루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라, 수많은 사건과 사고, 기억과 시간들이 그 속에 있었고 그것을 잇는 과정에서 평평했던 길들이 입체적인 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시간과공간연구소에서도 이러한 지도작업(mapping)은 계속 이어졌다. 도시의 어떤 지역을 알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늘 그곳을 걷고 지도를 그리는 일이었다.

도시의 지도는 도로, 건물, 공원 등을 나타내는 기호로 구성돼 있고, 우리는 이를 객관적인 공간 정보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시대별로 변화해온 지도를 도상학적으로 비교만 해 보아도 지도란 얼마나 관념적인지, 그리고 세계관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도란 어쩌면 결국 개별적인 요소를 선택하고 기입하는 과정에서 그 공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상상의 전개도인지도 모른다. 물론 인공위성으로 지리 정보를 수집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평의 땅, 몇 킬로미터의 거리 등과 같은 평균화된 공간개념 너머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팽창하고 우리 시야는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대구의 북성로라는 공간을 지도로 담을 때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이곳이 지도에 담기기 시작한 시점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과거의 지도들을 중첩해 '장소성'을 들여다봤다. 그 틈새를 채우는 문헌, 증언, 사진 등의 자료들이 지도와 결합해 서사적 형상을 이뤘다. 그래서 어디로 오가든 단순히 좌우와 위아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방향값에 따라서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 그것이 지도 작업의 즐거움이 되었다.

내가 길눈이 밝아진 건 그래서 호기심의 소산이다. 이미 본 것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무언가 더 깊숙이, 몰랐던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산책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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