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모범경로당 8곳 '나눔 실천'

구슬땀 흘려 일손 돕기·환경 정화, 화투판 걷고 한글 공부·재능 나눔

우리나라의 경로당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고려시대 노소(老所)라는 공간이 있어 양반 가정의 사랑방(기로)에 설치해 친교와 구빈의 역할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기로소(耆老所)라는 이름으로 유지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잠시 자취를 감췄다가 1950년 공립 노인정이 만들어졌고, 1989년 노인복지법 개정으로 경로당이라는 용어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경로당은 명실상부 노인들의 건강, 여가, 복지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경로당이 최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노인들이 화투를 치며 소일하거나 TV를 보는 등 단순 여가 기능의 사랑방에 그쳤던 경로당들이 점점 지역사회로 외연을 넓히고 있는 것.

대한노인회 대구시경로당광역지원센터 김태중 센터장은 "'부양받는 노인이 아니라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이라는 구호로 2014년부터 대구시 내 1천446개 경로당을 대상으로 활성화 사업에 나서고 있다"면서 "일과 재능나눔, 자원봉사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경로당 등으로 활발히 변신 중"이라고 말했다. 대구시가 올 초 선정한 '2016년 모범경로당' 8곳을 소개한다.

◆일하는 경로당

2016년 대구시 모범경로당 최우수로 꼽힌 수성구 '수성4가 경로당'은 일하는 경로당으로 유명하다. 61명의 회원들은 '일을 하기 위해' 경로당에 나온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한 공동작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 슬라이드 레일에 구슬을 삽입하는 작업인 '리레나 작업'에 회원들이 나서서 지역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는 총 41만여 개의 슬라이드 레일을 만들어 100여만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어르신들은 공동작업을 하면서 서로 얘기도 나누며 소통의 시간을 가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했다. 또 경로당 인근의 한 텃밭을 이용해 상추와 오이, 고추, 가지, 쑥갓 등을 재배해 자급자족하는 등 건강을 챙기고 있다. 오주혁 경로당 회장은 "단순한 노인들의 놀이공간이나 쉼터가 아닌 다양한 프로그램과 일거리를 만들면서 회원 수가 2배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동구 '강나루타운 경로당'도 여가를 즐기며 용돈을 버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회원들이 공동으로 박스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매달 20만~30만원 가량의 수익을 얻고 있다. 이는 대구 동구청이 경로당의 노인 일손과 중소기업의 일감을 서로 연결하는 '일하는 경로당 사업'을 지역 내 20여 곳의 경로당을 대상으로 벌이면서 성사됐다. 경로당 윤추자 회장은 "예전엔 경로당에 오면 화투를 치거나 TV를 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만 요즘은 소일거리를 하며 용돈도 벌 수 있어 인기"라고 자랑했다.

◆이웃과 나눔 실천

경로당 변신의 또 다른 양상은 봉사와 나눔을 통해 지역사회와의 유대를 넓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남구 '래미안웰리스트 경로당'은 회원들의 재능나눔 실천으로 삶의 질을 향상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50여 명의 경로당 회원들은 자체 봉사단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동네 환경정화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김장을 공동으로 한 뒤 홀몸노인들에게 나눠주는 등 '노노케어'에도 나서고 있다. 또 재능나눔 뜨개교실을 운영하고, 이재민돕기에도 적극 나서는 등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중구 '동성동 경로당' 회원들은 천연비누를 만든다. 비누 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해 회원들이 직접 만든 비누를 지역의 소외된 이웃에 나눠주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 또 매월 두 차례 동성동 일대를 돌며 깨끗한 거리 만들기 활동을 벌여 이웃 간 돈독한 정을 나누고 있다.

이웃에 밑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경로당도 있다. 북구 '산격복지회관 경로당' 회원들은 말벗이 절실한 홀몸노인 가정을 수시로 방문하고, 특히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월 2회씩 각 가정에 배달하는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회원들의 호응도는 높다. 장혜숙 회장은 "자원봉사활동을 강화하면서 회원들 스스로 부양받는 무기력한 존재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 분명한 책임감과 자존감을 가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달성군 '신당리 경로당'이 내건 모토는 '노인이 되지 말고, 어르신이 되자'이다. 나이를 앞세우며 뭐든지 받기만 하는 노인에서 벗어나, 먼저 나서서 베푸는 어르신으로 변신하자는 뜻이다. 어르신봉사클럽을 조직해 남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서면서 지역 주민들과의 거리가 크게 좁아졌다.

◆공부하는 경로당

서구에 위치한 '중리 경로당'은 배움을 통해 행복한 경로당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5월부터 지도자 어르신 4명과 학생 어르신 16명으로 구성된 '우리 서로 한글교실'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는 경로당이 됐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을 공부하는 날로 잡아 즐겁게 숙제를 하고 편지를 쓰면서 노년의 질을 높이고 있다. 김기동 회장은 "노인들이 함께 공부를 하면서 서로 간 상호작용을 통해 많은 변화가 왔다. 소통을 통한 고독감 해소는 물론 치매 문제도 깔끔하게 해결되는 등 여러모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경로당은 또 문해교실 자원봉사단과 마을공동체 자원봉사단을 결성해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서면서 '제3의 인생'을 살게 됐다는 호응을 얻고 있다.

달서구 '청자 경로당'은 지난해부터 운영을 시작한 한글수업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경로당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배움이나 일자리 등과 같은 생산적인 여가활동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한글교실이 생겼다. 퇴직교사들로 구성된 반딧불봉사단과 연계, 매주 화요일 열리는 한글교실은 저마다 사연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노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박효창 회장은 "전쟁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글을 미처 깨치지 못한 노인들이 그날 배운 글자를 한 자, 한 자 쓰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면서 "한글 외에도 색칠 공부, 휴대폰 교육 등의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의 자신감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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