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는 요지경 속이었다. 납득하기 힘든 일련의 사태들이 줄을 이었고, 그때마다 정부는 눈과 귀를 꼭꼭 틀어막은 채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언론이 들썩였고 시민들은 분노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시청률과 조회 수를 먹고사는 하루살이 언론들은 급변하는 또 다른 이야깃거리들을 퍼다 나르기 바빴다. 일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을 들고 물대포를 맞아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점점 황폐화되어가는 경제 상황에 먹고살기 힘든 대다수 국민들은 각자의 생활에 허우적거리기에도 고달팠다.
그러다 보니 뭐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수없이 뉴스를 보며 분개하고 "나라 꼴이…쯧쯧"이라며 혀를 찬 기억은 있는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매듭 그대로다. 아니,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치달아 왔다.
세월호는 2년 6개월이 넘도록 차가운 바닷속에 그대로 가라앉아 있다. 304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봐야 했던 충격과 공포는 쉬이 가시지 않지만 사건의 실체는 여태껏 오리무중이고 선장과 일부 선원 외엔 아무도 책임진 사람이 없다. 세월호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7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여기에다 취임 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각종 인사 난맥을 시작으로 국정원 대선 개입, 국정교과서, 개성공단 폐쇄, 위안부 합의, 백남기 농민 사망, 사드 배치 결정 등 수많은 정책과 국정 운영이 그야말로 정상적이라고 이해하기 힘든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급기야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왔다. 금 간 벽 사이로 물이 졸졸 새어나오다 급기야 둑을 허물어버린 것처럼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모든 의혹들이 일시에 터져 나오자 국민들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최순실 게이트' 광풍이 몰아친 지 10여 일,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야당은 물론 그 누구와도 상의 없는 '나 홀로 불통 개각'으로 불붙은 데 기름을 부어놨을 뿐이다. 이렇게 미숙하기도 쉽지 않을 터다. '결자해지'라고 그래도 국민들은 마지막 하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마저도 발로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기다린 국민이 무안할 정도의 오기심만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올 초 방영됐던 드라마 속에서 변호사 역할을 맡은 박신양은 법정에서 불의에 침묵하는 많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우린 불과 얼마 전 침묵하면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여러분들께 호소하고 싶다. 침묵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라고. 마치 세월호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세상 밖으로 나와 공론화될 수 있었던 데는 침묵하지 않고 행동으로 나섰던 이화여대 학생들 의 공이 크다. 최순실 딸 정유라의 특혜 의혹을 그냥 봐 넘기지 않고 저항했던 이화여대 학생과 교수들이 있었기에 말로만 떠돌던 최순실 게이트가 빅 이슈로 확산될 수 있었다.
이제 그 바통을 넘겨받는 것은 우리이다. 민주주의의 힘은 바로 평범한 국민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때다. 사회적 불신이 극에 치달은 검찰 수사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압박하고 이를 감시하는 것도, 언론이 관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도록 채찍질하는 일도 국민에게 달렸다.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사회 운동가인 스테판 에셀은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분노했다면 참여하라. 참여가 세상을 바꾸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라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는 분노할 때다. 그리고 참여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분노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안이함이 이런 어이없는 부정부패 커넥션을 만연하게 만들고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갈 나라를 망쳐놓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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