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최태민 일가와 영남대

"대구대를 한수 이남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겠다."(삼성 창업자 이병철) "이병철에게 양복 한 벌 얻어 입지 말라."(경주 최부자 최준)

마지막 경주 최부자인 독립운동가 최준은 광복과 함께 종합대학 설립에 나서 1947년 대구대학을 세웠다. 자신 등 대구경북 유지 5명 명의였다. 당시 기본 재산은 성금 1천만원과 토지 98만5천 평, 자신의 장서 7천200여 권. 대학은 뒷날 최준이 1955년 경주에 세운 계림대학과 1959년 합병했다. 계림대학을 위해 자신이 내놓은 4만3천여 평과 산림 276정보(82만8천 평) 등과 합쳤으니 덩치도 커졌다. '해방의 환희와 건국의 성업(聖業)에 기본적으로 할 사업은 교육의 재건'이라는 대구대학 설립 취지에 더욱 맞았다.

그러나 대학의 운명은 꼬였다. 군사정부 출범 이후 사정이 생겼고 1964년 삼성에 넘어가면서다. 최준은 삼성 이병철의 '최고 대학 약속'을 믿고 대학을 넘기며 가보인 '단계연'이란 벼루까지 주었다고 한다. 또 손자(최염)에게 어떤 대가도 못 받도록 엄명했다. 삼성의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고 1967년 대구의 청구대학과 합병되면서 영남대가 탄생, 막을 내려서다. 대구대학은 사라졌고 영남대는 한때 '박정희 교주'의 학교가 됐다.

그런데 대구대학 변신에 대한 이병철의 설명(회고록)이 설립자 최준과 사뭇 다르다. "자금난의 대구대학을 인수했다… 교육'문화의 서울 집중을 막고 지방에도 골고루 대학을 키워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당초 청구대학을 인수해서 종합대학으로 키울 계획을 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대학의 양도를 간청하기에 결국 넘겨주었다."

영남대학의 운명도 얄궂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1980년 재단 이사장 취임부터다. 학교 재산과 설립자 선조 묘가 있는 땅까지도 팔렸다. 여기에는 최순실 아버지(최태민)의 의붓아들(조순제)이 관련됐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설립자의 손자는 "박 대통령이 영남대 이사로 학교를 장악했던 8년 동안 최태민 일가는 법인 재산을 팔아치우고 부정 입학을 주도했다"고 증언했다. 영남대 땅을 판 돈이 최태민에게 흘러 들어갔고 최순실 재산의 씨앗이라는 이야기다.

독립운동가 꿈이 서린 대학이 최태민 일가의 사리(私利)에 희생됐는지 여부를 이젠 밝힐 때다. 굴곡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하니까. 설립자 후손의 바람처럼 '건국 성업'을 위해 '사회에 환원'되면 더욱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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