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장에 5년 취업 우즈벡 청년
물티슈 중고기계 들고 고국行, 대박
우리 따라 하는 이웃 경쟁자들 늘어
예전 투지로 해외 시장 개척 나서야
뒤죽박죽, 진흙탕, 혼돈이다. 입 하나로 날렵하게 세상을 휘젓고 산 인생들이 떠들썩하니 느닷없는 상실감에 참담하고 자괴감마저 든다. 그러나 둘러보면, 성실한 용맹으로 삶을 엮어가는 많은 보통사람들이 있음에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한 외국 청년의 사업 성공 스토리를 얘기해 볼까 한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의욕은 넘쳐났고, 실패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우리 자신들의 얘기였는데, 이젠 주인공이 바뀌었다. 일류 대기업들조차도 당장 돈 되지 않고 리스크 있는 부문은 말끔히 정리하며 고용과 투자를 최소화하는 절대 안전 경영에만 치중하는 것을 본다. 또 거리에는 한 집 건너 들어서는 커피점들만 즐비하지 않은가. 이런 풍토에서 중견'중소기업에만 투지를 불사르라 기대하기란 난망이겠다. 그리 제어키 어려웠던 창조적 용맹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신흥 개도국에서 우리나라로 취업 오게 되는 고용허가제 프로그램은 통상 5년의 체류 비자를 발급한다. 입국 전에 이미 근무할 사업체가 결정되고 계약까지 맺고서야 들어온다. 한 우즈베키스탄 청년이 그렇게 취직한 곳이 일회용 물티슈 생산 공장이었다. 작업 과정도 간단했고 근무 여건도 좋았다. 물티슈를 열심히 생산하긴 하면서도 자기 나라에서는 그 시장성에 대해 경험한 바 전무하기에 의문이 많았다. 생각으로는 100장, 200장짜리 저렴한 물티슈를 놔두고 비싼 한 장짜리 물티슈를 누가 사 쓸까, 또 팔린다고 해도 얼마나 팔릴까, 궁금증만 늘었다. 그런데 웬걸, 포장한 제품 박스가 연일 수요처로 실려 나가는 걸 보면서 고국에서도 이 사업은 되지 않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은 먹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에 몰두하게 됐단다.
어느덧 5년이 흘렀고, 통장에는 적지 않은 저축이 쌓였다. 고국에서는 무진장 귀하기만 한, 달러를 현금화하여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대다수의 외국 근로자들이 하듯 값나가는 한국산 전자제품을 왕창 구입해 갈 것인가 결정해야 할 순간이 왔다. 그러나 이 청년은 공장 사장에게 현금의 월급 대신에 물티슈 생산 중고 기계를 달라고 했다. 5년간의 노하우는 몸에 익었고, 기계만 가져가면 바로 사업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이 있었단다. 고국에 돌아왔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생산하자마자 입소문을 타며 국영기업 '우즈베크항공'에서부터 여기저기 고급 레스토랑에서까지 주문이 쏟아지더라는 거다.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대박을 친 거다.
여담이지만, 그렇게 대박 친 사업에 대해 상세히 듣게 된 것도 우리 공무원들의 철저한 관료주의 탓이었다. 이 청년 사업가가 돈을 벌어서 한국 공장에 연락을 했단다. 곧 달러를 더 많이 마련해서 날아갈 테니 중고 기계를 더 불하해 달라고 말이다. 비자를 신청했는데, 어허 생뚱맞게 거부를 당했다. 이해되지 않아 따졌지만, 이런저런 사업 핑계로 한국에 재입국해서 종적을 감추는 사례가 많아서 안 된다는 설명이 돌아왔단다. 결국 필자까지 이 케이스를 알게 되었고, 바로 조치하여 입국 비자를 발급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IMF 외환위기 당시에 고철가로 내팽개쳐진 양파망 생산 기계, 사탕 생산 기계, 봉제용 재봉틀 등을 구입하여 중앙아시아에 이전, 상품을 생산하며 부를 쌓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곳은 아직도 산업 및 기술이 다양하게 발달하지 않은 상황이라 우리에게는 큰 투자 없이 현지 제조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눈썰미로 시장경제를 익힌 우즈베크 사람이 고국에서 투지를 발휘함으로써 견실한 기업가로 탄생한 것이다.
우리도 미국과 일본을 뒤따라 잡을 땐, 거기서 뭐든지 가져와 그저 하기만 하면 대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했던 걸 따라하며 더 좋은 조건에서 더 열심히 하려는 이웃 경쟁자들도 만만찮다. 미적미적하면 바로 추월당한다. 더럽고 비겁한 '순실 게이트'에 미적댈 시간이 없다. 흐트러지려는 마음가짐을 추스르자. 우리를 기다리는 시장은 아직도 널렸다. 예전의 그 투지로, 그 용맹으로 또 다른 시장을 개척해야 하리라. 뭐라 해도 우리에겐 그것 이상의 자산이랄 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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