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 평산동 코발트 광산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6월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강제노역으로 전쟁무기 제작에 필요한 코발트를 채광했던 일제의 만행 현장이다. 이후 한국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된 양민과 대구형무소 수감자들이 재판도 없이 무자비하게 처형된 너무나 비참하고 한 맺힌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캄캄한 갱내에는 3천여 구의 유해와 유품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날의 참상을 말없이 전해주었다.
필자가 태어난 지 1년 6개월 되던 1950년 7월, 아버님께서 총칼로 무장한 군경에 의해 강제 연행된 후 영영 돌아오지 못하셨다. 아버님이 가시고 2년 후 어머님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이후 필자를 포함한 코발트 광산 피해 유족들은 너무나 힘든 삶을 견뎌야 했다. 지난 66년 동안 연좌제와 주위의 차가운 시선 등으로 늘 머리 숙이고 무시당하며 살아왔다. 대체 무슨 잘못이 있는지 밝혀지지도 않은 채 말이다.
그동안 이 광산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어 혼령들의 원혼을 달래주고 후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유족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추모사업 등을 통해 서서히 빛을 보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5월 한국전쟁 희생자 추모공원 조성을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유치 신청을 받았다. 국비 총 518억원으로 조성할 추모공원은 주민친화적인 생태평화공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경산 코발트 광산 일대에 역사평화추모공원이 들어서면 평산동 폐코발트 광산에서 수습해 현재 충북대학교에 임시 안치된 유해와 향후 갱내에서 발굴할 유해를 화장한 후 봉안하고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경산시는 공문이 온 것조차 제때 확인하지 못했고, 평산동과 점촌동 개발위원 10여 명의 의견을 묻고 그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공모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행자부와 선정위원회에서 유력한 후보지인 경산시가 유치 신청을 하지 않자 2차 공모를 했지만 경산시는 결국 공모 신청을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경산시장이나 경산시의회 의장 등은 역사평화추모공원 조성사업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신청 자체를 포기한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임에도 몇몇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공모 신청을 포기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이미 제주 4'3사건 역사평화공원을 비롯해 거창사건 추모공원, 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 영동 노근리 평화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외국의 아우슈비츠, 킬링필드, 히로시마 등의 경우처럼 역사적 비극이 발생했던 곳을 찾아서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고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리즘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게다가 이 같은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도시는 홍보 효과와 함께 경제적인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 산내지구는 시 공무원과 의회 의원, 유족회, 주민들이 힘을 모아 역사평화추모공원 조성사업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유해와 유품이 발굴돼 잘 보존되어 있고 접근성이 뛰어난 경산시는 공모 신청조차 하지 않아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돼 너무나 안타깝고 분통이 터진다.
올해도 11월 25일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 광산 집단학살 사건 위령탑 제막식과 위령제가 열린다. 두 번이나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린 경산시로 인해 아직도 갱내에 남아 있는 3천여 구의 유해와 구천을 떠돌고 있는 영령들께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 부디 이 못난 후손들을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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