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장부는 물론이고, 월말에 대금 결제하려고 가게에 보관 중이던 현금까지 다 타버렸습니다. 당장 먹고살 일이 걱정입니다. 복구나 재기는 아직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1일 오전 서문시장 4지구 상가 앞. 참혹한 폐허로 변한 삶의 터전 앞에서 피해 상인들은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 난간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목놓아 흐느끼던 한 할머니는 동료 상인의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걸음을 옮겼다. 특히 크리스마스와 연말 등 일 년 중 가장 큰 대목을 앞두고 이런 일이 터지자 4지구 상인뿐 아니라 서문시장 전체 상인들이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4지구 3층에서 숙녀복 점포를 하는 윤경숙 씨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한 일주일가량이 일 년 중 장사가 가장 잘되는 시즌이다 보니 점포마다 겨울 제품을 가득 쌓아놨다"며 "겨울옷은 부피도 크고 단가도 비싼데 다 타버렸다. 게다가 월말이어서 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점포에 현금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것까지 몽땅 타버렸다"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피해액이 수천만원은 넘을 텐데, 보험조차 못 들었다. 하루빨리 대체상가가 마련돼 장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손성봉 씨는 10년 전 2지구 때도 화재 피해를 당했다. 그후 그는 4지구 1층에서 16.5㎡(5평)짜리 커튼가게를 임차해 장사하고 있었다. 손 씨는 "10년 전 겨울에도 가게가 완전히 다 타버렸다. 소방서가 바로 코앞인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다 타버렸다니 믿기지 않는다. 피해액이 수천만원은 훌쩍 넘어갈 것 같다"고 했다.
피해 상인들은 현장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삼삼오오 모여 한숨만 쉬었다. 4지구 3층에서 6.6㎡(2평)짜리 옷가게를 운영했다는 한 60대 여성은 "외상 거래도 많은데, 수금 내용을 적어놓은 거래 장부가 타버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피해 상인 중에는 컴퓨터에 서툰 고령의 상인들이 많다 보니 대부분 종이 장부에 거래 내역과 잔금 현황을 적어 보관한다고 했다. 다른 한 상인은 "겨울 한 대목 장사하려고 빚내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써서 상품을 꽉 채워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젊은 상인은 "장부가 다 타버렸으니 어떻게 거래 내역을 찾아서 돈을 받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일부 상인들은 현금을 금고에 넣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다 금전 피해도 크게 입었다. 한 60대 상인은 "대금 장부와 거래 영수증, 다음 날 장사를 시작할 때 거스름돈으로 쓸 현금 등을 매장 재고 더미 속에 보관했는데 이걸 몽땅 잃었다. 오늘 대금 결제를 하려고 200만원가량 넣어둔 현금 봉투까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 점포를 가진 상인뿐 아니라 임차 점포 상인들의 피해도 크다. 4지구의 경우 임차 점포 상인 비율이 더 많다. 한 40대 남자 상인은 "가게를 키워볼 생각으로 몇 달 전 4지구 1층에서 권리금까지 주고 액세서리 장사를 시작했다. 점포가 1층 통로 쪽이어서 장사가 꽤 잘 됐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임차 상인은 "건물이 불타버렸는데 무슨 권리금이냐, 답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의 거래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거래처로부터 물건을 납품받기가 어려워졌다는 상인도 있다. 의류점을 운영하던 이모(63) 씨는 "외상으로 사온 옷을 몽땅 잃어 대금 결제가 어려워진 와중에 거래처 공장으로부터 한동안 옷을 납품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른 제품을 사다 팔아서 빚을 갚기도 급한 마당에 거래마저 끊어져 버리니 너무 막막하다"고 했다.
피해 상인들은 재기를 위한 몸부림을 서둘렀다. 4지구 상인들은 이날 오후 5시쯤 층별 상인 36명으로 구성된 '서문시장 4지구 화재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대체상가 마련 등 향후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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