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가면 '혼(魂)자수미술관'이란 데가 있다. 이름 그대로 혼(魂)을 실은 자수 작가의 작품 전시 공간이다. 틀에 박힌 표현이지만 '경주를 명작으로 수놓았다'는 말이 적확했다. 정통 회화도 아닌, 그렇다고 공예도 아닌 '퓨전 예술 작품'의 정체성을 굳이 규명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세계 명작을 조명과 자수의 어울림으로 느끼며 찬탄하기에 충분했다.
한 땀 한 땀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를 떠올렸다. 도슨트 역할을 맡은 관계자는 "A4 용지 크기 제작에 45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물론 한 사람이 했을 때를 가정해서다.
대부분의 작품은 혼자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작가 이용주(59)가 밑그림을 그린 뒤 색을 맞춘 비단실을 준비하면 문하생들이 공동 작업에 나선다.
자수 작품은 언뜻 유화와 구분되지 않았다. 가까이서 봐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유화의 질감과 또 다른 질감이었다. 작품에 손을 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기를 몇 번, 쓸데없이 CCTV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특히 보는 방향과 조명의 양에 따라 색이 변했다. 수를 놓을 때 바늘의 입사각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미술관 측의 보충 설명이 뒤따랐다. 색을 입힌 비단실의 효과이기도 했다. '모나리자'를 보며 '얼굴이 좀 부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그녀의 얼굴 크기와 윤기가 미세하게 달라진 것이었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것들이다.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서 본 작품들, 기회가 없었다면 인터넷에서 본 작품들과 비교해 봐도 좋다. 일부는 원작 그대로지만 작가가 재해석한 작품도 적잖다. 불교 경전을 자수로 재현해놓은 작품도 있다. 다만 서예에서 느낄 수 있는 동양적 아름다움, 그리고 붓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등은 아직 혼자수로 재현되기에 벅차 보였다.
이곳이 문을 연 지는 꽤 됐다. 2014년 4월부터다. 경주 중앙로 남쪽 끝자락, 봉황대광장 바로 옆이다. 3층 건물이다. 입구가 일반 상점처럼 생겼다. 관람료 5천원이다.(참, 만져봐도 되는 작품이 있다. 미술관 관계자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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