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국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돼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한쪽에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하야하고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수사와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사퇴하라는 것은 인민재판 아니냐'고 반문한다.

지금 상황은 이미 '사실 관계의 차원'을 넘었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하더라도 어느 한쪽은 원한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멈출 수도 없고 시시비비를 가려 매듭지을 수밖에 없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은 자신의 일을 하고, 정치권은 정국을 수습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특검과 헌법재판소는 법률에 근거해 조사하고, 판결하면 된다.

지금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과연 현행 대통령제, 즉 '1987년 체제'가 현대 대한민국의 상황에 맞느냐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1987년 체제'는 6'29선언으로 탄생한 것으로 군사독재의 폐해를 막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5년 단임제를 하다 보니 임기 3년만 지나면 힘이 빠진다. 5년간 권한을 부여받은 행정부가 3, 4년 지나면 사실상 '식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대통령 장기 독재'를 염려할 시대는 지났다. 따라서 5년 중 1, 2년간의 쇠약을 막고,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대통령 중임제를 생각해 볼 시점이다.

'대통령제'가 현대 대한민국에 적절한가도 짚어봐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명목상 1인자이지만 국가 전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국회 재적의원 60%가 찬성해야 법안을 의결할 수 있다는 '국회선진화'법은 행정부를 사실상 식물로 만들어버렸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시간을 끌고 의결을 막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대통령이 산업 구조를 바꾸고, 대학 교육의 체질을 바꾸는 등 나라의 구조와 관련한 일을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조선산업이 곤두박질 치고, 청년 실업이 급증하고 기업 10개 중 3개가 가동을 중단하고, 고령화가 심각하지만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 대통령의 실패가 야당의 성공이라 생각하니 걸핏하면 어깃장을 놓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19대 국회(2012년 5월~2016년 5월) 때 국민과 경제를 위한 경제 활성화 법안 중 행정부가 제출한 원안이 통과된 적은 없다. 대부분 폐기되거나 그나마 통과한 것들은 변질되어 늑장 통과됐다.

모든 것이 국회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국민 분열을 감당하며 대통령을 선출할 필요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대통령)하는 목적이 권세와 명성을 얻고자 함이라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일하고자 한다면 실패한다. 노무현의 정치는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이 많고, 의욕도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밤에 홀로 깨어 있으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국민들 인식 속에 실패한 대통령은 수두룩해도, 실패한 국회는 없다. '국회의원들 모조리 나쁜 놈들'이라고 욕을 해대지만 국정 실패의 책임을 국회의원들에게 묻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렇게 의원들은 2선, 3선, 4선, 5선을 이어간다. 정책을 아무리 방해해도 그런 이유로 낙선하는 국회의원은 없다.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국회의원'이다.

권한은 국회에 있고, 책임은 대통령과 행정부에 묻는 구조로는 '책임정치'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개헌 생각이 없다. 대선주자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국회의원들은 영생불사의 권력을 누리고 싶어서다. 이제는 권한과 함께 책임도 동시에 묻는 구조로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내각제가 불가능하다면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고, 국회 선진화법을 폐지해야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