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실과 바늘

송년 모임을 하다 보면 그동안 잊고 지낸 친구들을 볼 때가 있다. 지난주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서 학창 시절 둘도 없이 지낸 친구를 20여 년 만에 만났다. 고향에서 서로 이웃집에 살면서 항상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닌 친구였다. 그 친구가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못하면서 서로 간의 만남은 줄어들었다. 지금 그 친구는 서울과 천안에 큰 혼수예물 사업장을 두 곳이나 운영하고 있다. 제법 돈도 모았다. 그동안 동기 모임에 나오지 않았는데 나이가 점점 들다 보니 뒤를 돌아보게 된 모양이다. 요즘 같이 일과 사람에 치이며 바쁘게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은 오아시스 같다. 20여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 아주 고맙다.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단짝이 있다. 옛 기록에도 김유신과 김춘추라는 대표적인 실과 바늘 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은 출신 성분은 다르지만 백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힘을 합쳐 신라를 삼국통일로 이끄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실과 바늘 관계가 늘 좋은 결말만 겪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처럼 너무 심하게 엉켜버린 경우도 많고,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라는 노래처럼 '차라리 모르는 게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사이도 있다.

얼마 전 전 국민이 분노한 법원 판결이 있었다. 진경준 전 검사장과 넥슨 창업주 김정주 대표 간의 잘못된 우정 이야기인데, 둘 사이의 주식 거래로 진경준 전 검사장이 126억원 주식 대박을 올린 데 대해, 법원이 친한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돈거래라서 직무 연관성이 없다며 뇌물죄 혐의의 경우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실과 바늘 사이로 위장해 서로 잇속을 차리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도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한 결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는 왜 저런 친구가 없느냐'며 농담 삼아 비아냥거린 기억이 난다. 아무리 친한 실과 바늘 사이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바늘이 너무 빨리 가면 실이 끊어지고 바늘이 너무 느리면 실은 엉키고 만다.

그런데 정말 고마운 데도 잊고 살아온 실과 바늘 사이가 있다. 바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자기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부부 사이다. 고향에서 학교에서 만난 오래된 친구 사이도 좋고, 사회에서 만난 단짝도 좋다. 다들 연말이라 외부 모임이 많겠지만 오늘만큼은 집에 가는 길에 꽃 한 송이를 사서 들고 가자. 결혼 초기에는 눈물 고개,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리랑 고개를 이겨내고, 이제 살만하니 내리막 고개를 함께 가야 하는 진짜 실과 바늘 같은 반쪽에게 향기 나는 사람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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