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내수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소비 부진의 근본적 원인의 하나로 학원비 등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이 꼽히고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입시 전형 탓에 한 시간에 수십만 원짜리 입시컨설팅을 받고 내신 관리와 수능 고득점을 위해 과목당 수 십만 원, 월 수 백만 원을 자녀 학원비에 쏟아붓고 나면 소비에 쓸 돈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 한국 가정, 사교육 늘리려 먹고·입고·노는 것 다 줄였다
12일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전국 도시 근로자가구(2인 이상)는 한 달 평균 학원·보습교육에 22만6천576원을 지출했다.
1년 전 2015년 3분기(21만4천492원)보다 6% 정도 늘어난 것으로, 증가율이 같은 기간 처분가능소득(가처분소득) 증가율(1%)의 6배에 이른다. 아울러 1년간 소비자물가지수 평균 증가율(1%)의 6배이기도 하다.
이처럼 학원·보습 교육비 지출이 소득 증가에 비해 월등히 빨리 늘면서, 처분가능소득 가운데 학원·보습 교육비 등 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도 5.4%에서 5.7%로 높아졌다.
소득 증감에 따라 같은 방향으로 탄력적으로 늘거나 줄지 않는 우리나라 사교육비 추세는 다른 주요 소비품목과의 비교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교육비 지출이 6% 늘어나는 동안, 식료품·비주류음료(-4%), 주류·담배(-1%), 보건(-8%), 통신(-3%), 오락·문화(-1%) 등의 소비는 오히려 일제히 줄었다.
결국,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가계가 먹는 것, 입는 것, 휴대전화 요금, 술·담배, 유흥 등 다른 소비품목에서는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자녀나 가족의 입시·취업을 위한 사교육비 씀씀이는 더 늘렸다는 얘기다.
이는 거꾸로 말해, 사교육비 지출분을 사수하기 위해 쇼핑·술·담배를 자제하고, 전화를 덜 걸고, 영화를 덜 봤다는 말과도 같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교육비는 식비, 주거비 다음으로 가계 지출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저소득층도 자식들을 교육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부담이 되더라도 학원비 지출을 줄이기 힘든 상태에서 학원비 부담이 늘면 체감 물가 상승 폭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저-고소득층 사교육비 14배 차…"월급 모두 학원비로…생활비는 대출"
한 달 22만7천 원 수준이라는 사교육비 지출 규모도 평균 통계의 '함정'일 뿐, 실제로 소득 수준에 따라 각 가정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교육비(학원·보습 교육비)를 쓰고 있었다.
월 소득 100만~200만 원 사이 가정의 사교육비 월 지출액은 작년 3분기 기준으로 4만5천 원 정도였지만, 소득이 400만 원을 넘는 가정의 사교육비 지출액은 14배인 61만8천 원에 이르렀다.
처분가능소득 중 사교육비 비중도 소득 100만~200만 원 가정에서는 1.6%에 불과한 데 비해, 소득이 400만 원을 넘는 가계에서는 10%까지 치솟았다.
저소득층에서는 아예 사교육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반면 중산층 이상은 처분가능소득의 10%를 사교육에 쏟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하다는 뜻으로, 결국 소득에 따른 교육 기회 불평등과 그 결과로 사회적 지위와 빈부의 세습이 우려된다.
더구나 연합뉴스의 취재 과정에서 실제로 확인된 대도시 가정의 실제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훨씬 더 컸다.
서울 청담동에 사는 주부 김 모(46)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이의 학원비로 이달 국어 30만 원, 수학 50만 원, 사회탐구 60만 원, 영어 100만 원에 교재비까지 330만~340만 원이 들어갔다"며 "다른 자녀 학원비까지 합하면 한 달에 400만~500만 원이 학원비로 나가는 셈으로, 거의 소득의 대부분을 학원에 쏟아붓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월수입이 500만 원을 조금 넘는다는 회사원 이 모(50) 씨도 고등학교 3학년생인 딸과 2학년생인 아들의 사교육비로 한 달에 500만 원을 쓰고 있었다. 이외 생활비 100만 원 정도를 매달 은행으로부터 대출까지 받는 실정이다.
이 씨는 "다른 집 애들은 다 학원에 다니는데 우리 아이들만 안 보내면 불안하니까 빚을 내서라도 학원에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정동영 "'탈북민' 명칭변경 검토…어감 나빠 탈북민들도 싫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