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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만어 世事萬語] 세수 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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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직원 10여 명을 거느린 소기업의 대표와 식사를 같이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세금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이 나왔다.

"요즘 불경기라더니 일거리가 많이 줄었나 봐요"라고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일거리는 그럭저럭 있는데, 세무서에서 하도 엄격하게 해서 남는 게 없단다. 예전과 달리 세무행정이 얼마나 엄격해졌는지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금이라는 건 많이 벌면 많이 내고, 적게 벌면 적게 내기 마련인데, 괜스레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유리지갑 월급쟁이 앞에서, 그래도 장사 좀 된다는 '사장님'이 "세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는 것은 "나, 요즘 좀 잘나갑니다" 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런데 정색을 하고 손을 내흔든다. 업무의 특성상 잔업과 야근이 많은 편인데, 임금을 다른 업체보다 좀 더 주기는 하지만 직원들의 불만이 높다는 것이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직원들이 사표를 내고 수도권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생활비가 비싼 수도권으로 가서 몇 푼 더 받아봤자 실속은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젊은 직원들은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다고 했다.

더욱 혼란스러웠다. 세금이랑 직원들의 수도권 이탈이 무슨 상관이지? 설명은 이랬다. 예전엔 직원들이 잔업과 야근으로 지치면 회식도 하고, 얼마 안 되지만 조그만 격려금도 주고 해서 불만을 달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세금을 하도 혹독하게 거둬 가니까 그럴 여유가 없어져 불만을 달랠 방법이 없어졌다는 하소연이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했지만, 그땐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지난해 국세 수입이 242조~243조원으로 추산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상보다 10조원이 더 걷혔고, 2015년에 비해서는 무려 24조원 이상이 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이만큼 좋아졌을까? 잘 알고 있듯이 국가 경제는 침체에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많이 벌어서 많은 세금을 낸다'는 순진한 나의 가설은 엉터리가 됐다. '정부가 수입 예측을 잘못해서 세수가 늘게 되면, 그것은 결국 민간이 쓸 돈을 정부가 뺏어간 꼴이 된다'는 해석이 훨씬 현실적이고 정확한 분석인 셈이다.

문제는 정부의 중산'서민층에 대한 가혹한 세금거두기가 올해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대내외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세수 환경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나아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들의 장밋빛 대선 공약을 볼 때, 정부가 써야 할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다가 세금 때문에 회사문을 닫아야겠다는 기업이 나오지 않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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