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48) 경대연합외과 원장은 '의지일생(醫之一生) 묘법존심(妙法存心)'의 뜻을 읊었다. "의사의 인생에서 환자를 고치는 묘법은 마음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환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죠." 이는 그가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한 명의 유의태의 가르침이다.
이 원장은 담낭용종 제거술을 앞둔 환자에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거듭 말했다. 직접 신체 부위를 그려 담낭의 역할이나 용종의 원인을 알려주고, 전신마취를 포함한 수술 과정도 꼼꼼하게 설명했다. 그는 "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되레 환자들이 걱정하기 때문에 알 권리를 지키는 선에서 최소한 설명한다. 알려줄 건 알려주되 안심하도록 믿음을 주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24시간 환자를 받는다. 이틀에 한 번씩 당직 근무도 선다. 그는 "당직 근무를 핑계로 술을 거절할 수 있어서 금주에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스승과 함께 복강경 대장 수술 선도한 외과의
지난해 그는 유명세를 탔다. 대구대 생물교육학과 교수였던 아버지 고(故) 이갑숙 명예교수의 이름으로 대구대에 장학금 1억원을 기부한 덕분이다. 아버지는 퇴직연금까지 미리 받아 제자들을 취업시키는 데 보탠 스승이었다. "아버지라면 부의금을 어떻게 쓰셨을까 고민하다가 모두 기부하기로 했어요. 어머니는 '이 양반은 죽어서도 자기 좋은 데 돈 쓰네' 하시더라고요. 허허."
이 원장은 1남 3녀 중 막내이자 외아들이다. 첫째 누나는 경북대 사범대, 둘째 누나는 약학대, 셋째 누나는 영남대 의과대, 이 원장은 경북대 의과대에 들어갔다. "막내아들이라 예쁨을 받았다 싶겠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관심을 받으려면 공부라도 잘해야 했죠."
그는 의과대 본과 3학년 때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맞았다. "외과 실습에서 수술을 참관하는데 '정말 멋있다' 싶더군요. 붓글씨를 쓰듯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 없이 유려하게 수술하는데, 예술 그 자체였죠. 그때부터 외과만 바라봤습니다."
대장항문외과 레지던트를 택한 그에게 행운도 따랐다. 최규석 경북대병원 교수를 도와 대구 최초로 복강경으로 대장을 수술하는 기회를 얻은 것. "수술실 복강경 장비 중에서 가장 좋은 걸 차지하려고 새벽에 일어나 기다렸어요. 장비를 직접 잡아보고 싶어서 장비 세척도 도맡아 했죠."
레지던트 2년 차에 파견 근무하던 안동병원에서는 쫓겨날 뻔했다. 외과과장 몰래 급성 맹장염 환자에게 복강경 수술을 한 탓이었다. "난생처음 복강경 수술을 집도할 기회였죠. 정말 자신 있었고 환자도 완쾌됐어요.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던 외과 과장님이 한나절 만에 '같이 복강경 수술을 해보자'고 하시더군요."
◆의료 제도 발전 위해 정부-의료인 연결고리 될 것
지난 2003년 그는 교수를 꿈꾸며 구미차병원으로 옮겨 3년간 근무했다. "경북대병원에서 전임강사로 일하며 기다려볼까 했지만 후배들에게 못할 짓이더라고요. 연구, 교육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진료에만 매진할 수 있는 개원의가 되자고 스스로 위로했죠."
2006년 개원한 그는 지역 개원가 최초로 복강경으로 맹장염 수술을 시작했고 위밴드 수술도 병행했다. 위밴드 수술의 명가인 호주 모나쉬대학에서 수술을 배워왔지만 미심쩍은 마음에 망설이다가 거의 접었다. 그는 "열정 넘쳤던 내가 지금은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요즘은 '단일공 복강경'이라는 수술법을 많이 쓰는데 저는 한 번 도전해보고 불편해서 포기했어요. 이젠 늙었나 봐요."
손끝이 야무진 그는 개원의 밴드 'MS 포에버(forever)'에서 기타를 친다. "의과대 재학 시절에 그룹사운드에서 기타를 쳤는데, 몸이 깡마르고 머리를 길게 길러 '밀대'라고 불렸어요. 지금도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죠." 기타와 수술밖에 몰랐던 그가 의료법과 제도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지난 2015년 대구시의사회 보험이사로 일하면서부터다.
그는 보험이사로 일선 의사들에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현지조사와 관련된 법적 권리를 알려주고 대응 방법을 조언한다. 이를 위해 매주 서울을 찾아 교육도 받는다.
그는 "이제는 남들보다 앞서가는 외과의가 될 수 없다는 건 인정했다"고 했다. 대신 의료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료인과 정부의 소통을 돕는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올해 의과대에 들어간 아들이 의사가 됐을 때는 좀 더 발전된 의료제도 아래에서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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