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그랜저(기사 딸린 차?) 태워줄 수 있는 사람은 8천 명이야." 오래전 어떤 유명 정치인이 대선 캠프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후보를 대통령 만들고 한자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라는 독려성 발언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리 없다. 캠프 참여자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데에는 이런 식의 자리 유혹도 한몫한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정치인의 발언인지라 8천 명의 근거를 확인할 길은 없다. 최근 언론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2천여 개에 이른다는 기사도 보인다. 편차가 큰 것은 관점에 따라 대통령 임명직 여부를 달리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황교안 권한대행의 인사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마사회장 등 각종 공기업의 임원 임명 절차마다 야당은 '현상 유지'를 넘은 월권이라고 비판한다. 자리를 비워 놓는 것이 현상 유지인지 공석을 메우는 게 합당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비판의 속내는 뻔하다. 새로운 정권의 전리품이 줄어든다는 노골적인 항변이다. 나눌 수 있는 몫이 적어 불협화음이 생길 경우 정권의 균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을 물러나게 하려는 무리수를 두곤 한다.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민간기업 인사에까지 개입한다. 자리는 적고, 챙겨야 할 사람은 많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이처럼 수천 개에 이르는 자리 배분 권한이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 하나의 요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바꾸어 말해 막강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하면 제왕적 대통령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굳이 번거로운 개헌까지 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헌법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헌법상 대통령의 인사권은 사실 매우 제한적이다. 행정부를 중심으로 국무총리, 국무위원, 그리고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공무원 임면권이 있을 뿐이다. 정치권 인사들이 노리는 자리는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이 아니다. 공기업 등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가 주된 관심의 대상이다. 문제가 된 마사회장을 예로 들어 보자. 한국마사회법은 마사회에 회장, 부회장, 상임이사 등의 임원을 둘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임원의 임명은 마사회법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 그에 의하면 일정 규모 이하의 공기업을 제외한 대부분 공기업의 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기업의 장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 권한은 이처럼 헌법이 아니라 법률에 의해 인정된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공기업의 인사권을 주무장관이 행사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면 제왕적 대통령을 상당 부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정치권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제왕적 대통령을 막기 위한 개헌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쉽게 실행할 수 있는 방법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아니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신들이 집권하면 마음대로 퍼낼 수 있는 꿀단지를 깨뜨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디테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한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나라가 달라지지 않는다. 당연시하던 대통령의 인사권도 의문을 가지고 바라볼 때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 장'차관만 임명하고 부처 인사는 주무장관에게 맡기는 대통령, 공기업 인사를 주무장관에게 맡기는 대통령이 나와야 제왕적이 아닌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과거 본란을 통해 나는 대통령 비서실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비서실의 규모와 권한을 축소하고 내각과 함께 일하겠다는 대선 후보들이 여럿 나오고 있다. 이 칼럼 이후 대통령의 인사권을 스스로 축소하겠다는 후보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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