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외교관의 푸념

'대사(大使)는 자국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도록 외국에 보내진 정직한 사람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외교관 헨리 워튼 경의 유명한 말이다. 그는 유럽의 절대왕정 시대에 국가 간 교섭의 최일선에 있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적 특성과 고충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외교관은 주재국의 정치'사회 등 모든 상황을 관찰해 관련 정보를 본국에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또 협상의 자리에서 본국 훈령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일도 다반사다. 이 때문에 17세기 제임스 1세 시절 스페인 대사 디에고 곤도마르 백작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임무가 합쳐지면서 대사라는 직업이 더러워졌다"고 불평했다.

이 부정적인 표현은 공적인 임무를 위해 원치 않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해되는 대목이다. 공적 임무 수행과 사적인 감정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요즘 표현대로 '고도의 감정 노동'을 요구하는 외교관의 직무가 시대를 떠나 녹록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 대사의 사례를 보면 외교관이라는 인식과 통념이 실상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명박정부 때 2년여 간 대사로 재직한 그는 퇴임 후 혐한(嫌韓) 책을 잇따라 출간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1일부터 배포를 시작한 책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좋았다'도 그중 하나다. 매우 자극적인 제목의 이 산문집은 '일한 대립의 진상' '한국의 대오산' 등 이전 책과 마찬가지로 '한국 깎아내리기'가 주된 내용이다. 무토 전 대사는 한국을 잘 아는 '지한파 외교관'으로 통한다. 한국을 잘 아는 만큼 애정 어린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그의 책들은 일반적인 비판이 아니라 "한국 뒤통수를 친다"는 평가가 많다.

일각에서는 혐한 서적이 잘 팔리자 그 흐름에 편승한 행위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좀체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직업 외교관으로서의 품위 등 평판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오죽하면 일본 외무성 내에서조차 "시간 낭비"라며 외면한다는 것이다.

일련의 책들이 무토 전 대사의 개인적 일탈인지 아니면 일본 외교 당국의 대(對)한국 인식의 한 단면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다. 차라리 보다 나은 한일 관계를 조언하는 책을 내는 것이 더 건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비판 없이 남을 흉보는 전직 대사의 푸념이 추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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