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팔은 안으로 굽는다

국회에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을 받지 못한 채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상조 위원장은 우리 시골 옆 동네 월림리 출신이고, 진외가가 우리 동네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학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분이어서 그분의 업무 능력에 대해서는 야당도 인정한다. 단지 야당이 현 정부와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야당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지지를 하는 지역의 어른들도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어른들은 그를 도개면이 낳은 천재로 기억하고 있으며, 누구처럼 뻣뻣하고 거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상조 같은 사람은 안 쓰는 기 이상하지."라고 말한다.

야당이 반대하는 데도 도개면에 사는 골수 야당 지지자들이 김 위원장의 임명에 찬성하는 것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우리 속담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 속담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정(情)이 쏠리는 것은 일반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비슷한 속담에 '가재는 게 편'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것은 자기편끼리만 뭉치려는 끼리끼리 문화의 부정적인 성격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미의 결이 조금 다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성격은 조금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팔을 뒤틀면 바깥쪽으로도 굽을 수도 있고, 어깨나 몸통을 움직이면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가장 난처한 것은 이 속담은 가깝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한국인들이 말하는 '정'이라는 것이 차별을 전제로 하는 것이냐 하는 물음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보면 그런 경향이 있기 때문에 뭐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를 보면 안에 해당하는 우리 편에게 애정이 깊고 너그러워질수록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혹해지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자기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워하기까지 한다. 미워할 이유도 딱히 없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으면서도 말이다.

아무리 공정하게 세상을 바라보려고 해도 확실히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보고 조금 더 너그럽게 생각해 주면, 최소한 알지 못하면서 미워하지 않으면, 안으로 굽는 팔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범위는 우리 민족이라는 단위까지도 넓어질 수 있다. 억지로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기보다 굽을 수 있는 안의 범위를 넓혀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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