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까마귀' 정치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놀릴 때 쓰는 속담이다. 까마귀 고기와 건망증의 연관성은 전혀 없고, 과학적 근거도 미약하다. 그런데도, 예로부터 까마귀 고기는 건망증 유발제로 통했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전래 설화 '바보 부부의 이야기'에도 까마귀 고기가 등장한다. 객줏집 주인 내외는 손님들이 물건을 잊고 가도록 하기 위해 손님들에게 까마귀 고기를 먹인다. 내외는 손님들이 물건은 놔두지 않은 채 음식값까지 잊고 가자, 까마귀 고기가 정말 효과가 있다며 바보같이 좋아한다는 내용이다.

일부에서는 '까마귀'와 '까먹다'의 발음이 비슷해서 생겼다고 했고, '까맣게 잊었다'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까마귀는 불길한 새로 인식돼 왔고, 고기는 노린내 때문에 거의 먹지 않았으니 이런 속담이 별다른 이견 없이 전해져 왔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까마귀는 아주 똑똑한 새로 알려져 있어 이런 오해를 받는 것이 억울할 것이다. 까마귀는 인간의 얼굴을 기억하고, 숫자를 다섯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다.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은 침팬지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다. 일본 도쿄에서는 음식점'가정집의 음식물 찌꺼기를 뒤져 먹고 사는 까마귀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까마귀는 우리가 속어로 쓰는 '새 대가리'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조류인 셈이다.

어쨌든, 우리 정치판만큼 '까마귀 고기'를 먹은 듯한 분들이 많은 곳도 드물 것이다. 정권만 잡고 나면 집권 세력은 과거의 나쁜 선례를 깡그리 잊은 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까마귀 정치'를 예사로 벌인다. 장관 인선에 있어 문재인정부의 오만과 독선이 엿보이는데, 그 징조가 '까마귀 울음소리'처럼 불길해 보인다. 박근혜정부가 독선과 불통으로 몰락한 지 얼마나 됐다고 현 정부가 이런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공약했다면, 이를 어겼을 때에는 국민과 국회에 사과하고 임명을 강행하는 것이 옳은 자세다.

현 정부는 박근혜정부와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도덕성과 청렴성을 자신하겠지만, 그것조차 오만과 독선으로 비칠 수 있다. '지지율이 깡패'라는 정치권 속설을 믿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겸손함과 낮은 자세만이 정권의 신뢰성을 담보해 줄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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