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쓸모없는 것의 쓸모

요즘 텔레비전에서 하는 가장 흥미로운 예능 프로그램은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역사, 철학, 문학, 과학, 여행 등의 다양한 주제로 끝도 없이 이어가는 국가대표급 지식인들의 수다를 듣고 있으면 은근히 몰입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프로그램의 제목이 '쓸모 있는'이 아니라 '쓸데없는'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쓸모 있는 것을 찾아 자투리 시간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 치열한 세상에 대놓고 '쓸데없는'을 내세우는 프로그램이라니!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재미는 바로 '쓸모없음'에 대한 새로운 생각 혹은 재발견에 있다.

'쓸데', '쓸모'라는 말은 한자로 표현하면 '유용'(有用), '유익'(有益)이다. 반대말이 '무용'(無用), '무익'(無益)인 것을 생각해 보면 '쓸모'는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당연히 쓸모없는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치가 있다, 없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며, 이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온다.

장자가 평소 하는 말들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혜자가 말을 한다.

"우리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가죽나무라고 부르더군. 그 큰 줄기는 울퉁불퉁해서 먹줄을 쓸 수 없고, 작은 가지는 꼬부라져서 자를 댈 수가 없네. 길가에 있어도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네. 이 나무처럼 자네의 말은 거창하기만 하고 쓸모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외면하는 걸세."

그러자 장자는 말한다.

"자네는 그 나무가 쓸모없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지만, 어찌 저 넓은 들판에 나무를 심어 그 주위를 노닐며 즐기고, 나무 아래에서 거리낌 없이 누워 편안히 잠잘 생각을 않는가? 나무가 도끼질을 당해서 없어질 일도 없으니 어찌 근심 걱정이 있겠는가?"

혜자는 나무가 재목으로 집을 짓거나 도구를 만드는 데 사용되어야만 나무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장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나무가 삶의 여유와 재미를 주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장자는 쓸모에 대한 편협한 생각 때문에 큰 관점에서 삶을 가치 있게 사는 데 쓸모가 있는 것을 놓쳐버리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말한다. 이 칼럼의 제목이 '우리말 이야기'라고 하면서 맞춤법, 많이 틀리는 표준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고 맨날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다고.(그래서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쓸데없는 말이라고 생각될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새롭게 뭔가를 아는 재미가 있고,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면 맞춤법 하나를 아는 것보다 더 쓸모 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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