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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위장 전입이라는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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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도 위장 전입을 경험한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해 내 어머니의 위장 전입이다. IMF 외환위기로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공장이 도산했다. 아버지는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셨고, 살던 집은 은행에 넘어가게 되어 어머니와 동생, 나는 급히 작은 셋방으로 옮겨야 했다. 이사라고 할 수 없는 이사를 마치고 어머니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셨다. 전입신고를 하면 채권자들이 다시 몰려올 것이 뻔했다. 주민등록법 위반이었다. 위법임을 모르지 않으셨지만 그 당시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 가진 것 없는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내 어머니의 위장 전입은 불법이지만 부도덕한 것일까? 과연 부동산 투기를 위해 주소를 이전해서 불로소득을 얻고, 자기 자녀의 진학을 위해 남의 자녀 자리를 빼앗는 행위가 빚 독촉에서 피하기 위해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것과 과연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선택하는 '위장의 삶'과 자신의 기득권으로 더 큰 이익을 얻고자 선택하는 '위장의 삶'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법의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정직함과 정의, 투명함과 같은 가치도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위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 이런 요구가 강자를 향하면 비판과 견제가 되지만 약자를 향하면 지배수단이 된다. 미셸 푸코가 말한 통치술로서의 규율권력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기에 '정직해야 한다, 어떤 위장도 없어야 한다'는 요구도 맥락에 따라 살펴봐야 한다. 위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 고통, 고뇌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위장 전입'이라는 단죄는 정의가 아닌 폭력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 위장 전입 문제를 둘러싼 하나의 무거운 진실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위장 전입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아닐까? 매번 청문회에서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위장 전입 사실이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관행처럼 되어버려 거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국가도, 사회도 내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탓에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 스스로 노후를 대비해 놓고,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아이에게 더 좋은 학교에서 공부시키려고 했던 것이라면, 위장 전입은 힘없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힘센 사람에게도 각자도생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필수 아이템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진짜 문제는 위장 전입이 아니라 노후 불안, 주거 불안, 교육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다 하는 위장 전입 정도는 눈 감아줘야 할까? 여성 외교부 장관은 위장 전입 때문에 안 된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인간 실존의 복잡함에 대해 생각했다.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할 곳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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