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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 모두 죽고 나면 우리를 얼마나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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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복무 이석수 옹 한탄

1950년 6월 25일. 이날도 18세 이석수 군(현재 85세'사진)은 어김없이 동지상업중학교로 등교했다. 4학년(당시 6년제)이었다. "전쟁이 났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다. 겁이 난 이 군은 강제 징병을 피하고자 7월 10일 강원도에서 피란온 경찰관 30여 명이 포항 효자역 앞에 꾸린 철도수비대에 들어갔다. 그러다 포항지역 3개 중학교 학도의용군 1차 전송식이 있은 후 8월 8일 철도수비대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폭탄 소리가 영덕을 지나 가까이 다가왔다. 이 군의 가족은 피란 짐을 꾸려야 했다. 하지만, 짐을 다 싸지도 못한 8월 11일 새벽, 이 군과 가족은 집으로 들이닥친 북한군에 잡혀 연일읍 자명리까지 끌려갔다. 자명리에서 미군 공군이 북한군을 발견하고 사격을 퍼부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이 틈에 이 군과 가족은 대열에서 빠져나와 다시 유강리 집에 숨었다.

본격적인 피란길에 오른 것은 12일이었다. 얼마 가지 못하고, 오천읍 냉천에서 국군 강제 징병에 딱 걸렸다. 이렇게 간 곳이 국군 제3사단 23연대 공병대였다. 군번은 없었다. 영덕 '장사상륙작전'이 끝날 무렵 이 군이 속한 공병대는 이곳을 지나가며 국군에 보급할 총을 주웠다. 공병대의 역할이 그런 것이었다. "이 작전에 학도병들이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며 장교들이 주고받는 말은 이 군의 마음을 날카롭게 찔렀다.

공병대는 원산과 흥남을 거쳐 압록강, 두만강까지 갔다.

10월 말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상황은 또 급변했다. 국군과 유엔군의 후퇴 작전에 공병대도 흥남 부두로 가게 됐고, '흥남 철수작전'에 합류했다. 이 작전으로 강원도 인제까지 무사히 도착한 이 군은 이듬해인 1951년 2월 "학도병을 임의조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장교, 카투사, 귀가 조치 등 3가지 선택사항 중 이 군은 "집에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전쟁에 참전한 이 군을 정부는 군대로 다시 불렀다. 정부는 "군번이 없는 자는 군인이 아니므로 병적 확인이 불가하다"며 학도병 시절은 인정해주지 않은 채 1956년 대학을 졸업한 이 군을 입대시켰다.

85세가 된 이석수 옹은 군 제대 후 공직에 투신, 경북도 부지사직에까지 올랐다. 이 옹은 아직도 학도병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정부를 못내 아쉬워했다. 이 옹은 "전두환 정권 시절 재향군인회만 빼고 나머지 단체는 해산시키면서, 학도병은 취급도 받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에 와서야 국가유공자 자격증을 줬고, 박근혜 정권에서 호국영웅장을 줘 그나마 명예를 되찾았다"며 "67년 전 8개월 동안 한국전쟁에 목숨을 걸고 참전했던 우리가 모두 죽고 나면, 나라가 우리를 과연 얼마나 기억해줄지 걱정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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